낯선 세계에서 만난 또 다른 나

취미 공유하기

by 야초툰

"나 요즘 행복한 것 같아."


행복하다니. 갑자기 날아 온 뜬금없는 소리에 남편을 쳐다봤다. 다행히 미치진 않은 것 같다. 남편은 이제 막 휘저은 믹스 커피를 마시며, 햇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창문을 바라보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순간 공유 오빠를 따라 하는 건가? 주변에 던질 휴지를찾는데, 남편은 하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냥, 취미가 없던 내가 너 때문에 갑자기 뜨개질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모르던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잖아. 오늘 눈을 뜨는데 새삼 너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남편은 곧 눈물을 쏟을 듯한 미소로 나를 쳐다봤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그만 양심고백을 할 뻔했다. 사실 뜨개질은 너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였다고. 다른 사람들과 만남이 서툰 내가 너의 등뒤에 숨어있기 위해서 기획했던 거라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진실은 때론 그동안 어렵게 쌓은 신뢰를 무너트리니까. 그저 나는 짐승이 두려울 때 몸을 크게 부풀이는 것처럼, 그럼 너는 나에게 평생 고마워해야 한다고 가슴을 크게 부풀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남편이 이렇게까지 뜨개질에 빠질 줄은 나 역시 몰랐다. 나에겐 그저 코를 풀려고 꺼낸 휴지에 글을 쓴 것뿐이니까. 미싱처럼 또 하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실을 엮을 때마다 차분해지는 마음이 좋다며, 누군가를 위해 한 코 한 코를 뜨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뜨개질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가 어디쯤에 있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다고. 혼자 하는 일은 늘 외로운 법이니까.


나 역시 그랬다. 처음 글을 썼을 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내 글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맞는지. 혼자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불안함,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상상력이 만든 내 미래가 두려웠다. 그래서 소설 쓰기 수업을 등록한 적이 있었다. 온라인 수업이었는데도, 손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맫혔다.


시선 공포증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은 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졌다. 자기소개도 못해, 말도 못 하는데 무슨 소설을 쓴다고. 자괴감이 치솟았다. 수업 시간마다 내 글을 향한 날 선 비판을 감당한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누구와 같이 글을 쓰는 일을. 아니다. 도망쳤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수업을 등록하고 몇 번 나가지 못하고 나와 버렸으니까. 결국 그런 사람이라며. 나를 단정 짓게 되었다. 나를 포기하게 되었다.


남편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


남편이 만든 편물을 인터넷에 올렸다. 글을 쓰기 위해가 아니라, 남편에게 좋은 뜨개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런데, 뜨개 콘서트 담당자가 우연히 그 사진을 보고 DM을 보내왔다.


"리코더와 함께하는 뜨개 공연을 하는데, 남편 분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유레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가 나처럼 무너지지 않았으면 했다. 바로 참여하겠다고 내가 대신 신청을 했다. 남편에게 묻지도 않은 채로. 남편도 처음엔 당황하더니, 돈을 내서 환불은 안 된다고 하니 가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남편은 억지로 바다에 내던져졌다. 처음 하는 바다 수영니까 남편은 물도 많이 먹고, 숨도 거칠게 내뱉겠지. 예상했다. 내가 하지 못 한 일을 그에게 떠넘겼다. 그가 나보다 낫길 바라며. 덜덜 떨면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모임에 다녀온 남편의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곧 자신이 나간 그 바다는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뜨개질을 하는 것만으로 응원받는 기분이었다고. 우연히 나간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마주한 듯,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뜨개를 하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 글을 쓰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취미도, 친구도 없던 나에게 뜨개라는 친구를 소개해줬잖아. 그리고 사람들한테 아내가 소설가라니까. 엄청 부러워해서 내 어깨까지 들썩였어."


그걸 이제 깨닫다니, 남편이 숱하게 날린 내 맨홀 뚜껑이 제자리를 찾아오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없다던 황무지에 씨를 뿌리고 조금씩 물을 주었더니, 어느새 햇살을 받으며 자란 초록 잎의 새싹을 보았다.


그 동안 찬 바람에 얼어붙었던 마음도, 남이 밟고 간 자리가 아프다고 울부짖었던 그 소리도 땅 속 깊이 가라앉았다.


우리 뜨개질의 여정을 계속될 것 같다. 그는 기술직으로 나는 머리직을 수행하면서. 물론, 남편은 언젠간 다시 내 머리 뚜껑을 날리겠지. 그럼 또 그때는 오늘처럼 자신이 직접 뜬 무언가를 내 머리 위에 씌어주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었다.


결혼은 아직도 낯선 세계였다. 챙겨야 할 가족 행사가 왜 이렇게도 많은 지. 사니 못 사느니 울부 짓기도 하고. 가끔 행복했다. 그래도 낯섦보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방향을 틀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알 수는 없지만, 글을 써서 변하게 된 남편이 트는 방향대로 같이 흘러가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감기는 결국 계절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