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토마토, 집 밖으로 나가다.

집 밖으로 나가다.

by 야초툰

나는 종종 남편에게 날씨를 묻는다. 오늘 날씨는 어때? 그럼 버스 타는 남편은 오늘은 조금 추워. 비가 와. 해가 다른 날보다 센 편인 듯이라며 답장을 보낸다. 우리 집 기상 캐스터. 하지만 그는 나에게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던가. 비가 오니까 우산을 챙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암묵적 합의. 어차피 너는 밖에 안 나갈 거잖아.라는 정해진 명제 같은 거랄까? 남편은 그런 내가 왜 날씨를 묻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너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어렸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호기심의 시작은.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여자 구두가 궁금해 엄마에게 장을 보다가 사달라고 바닥에 두르눕기 시전을 할 정도였으니까. 엄마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신지도 못해 바닥에 질질 끌고 가던 그 빨간 구두를 왜 산다고 했냐고. 궁금했으니까. 그 구두를 신은 여자의 마음이.


그렇게 나와 함께 열심히 자란 호기심은 걸으면 생기는 눈 위에 발자국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눈에 빠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 떠오르는 질문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쩌면 그 성향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회사에서 생기는 호기심은 남을 불편하게 만드니까. 굳이 일을 만들지 말라는 표정을 많이 마주했다. 돌아오는 질문도 한결같았다. 왜 그렇게 까지 하시는 거예요? 재밌으니까. 궁금하니까. 하지만 그건 그들이 바라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말은 그럼 그건 다음에 할게요. 였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호텔에는 화재 시 급하게 안내를 하기 위해 모든 객실 내에 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예약실 대리였던 나는, 화재 경보 시스템을 테스트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되었다. 안전모를 쓰고 방재실까지 뛰어가서 총지배인이 하는 말을 통역해야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돼. 내가 영국인인 총지배인 발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면 어떡하지?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화재 방송 테스트를 하는 시간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으면, 차라리 안내 방송이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었으면. 이 방송은 잘 나오고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는.


그때가 마침, 코로나 시절이었다. 코로나 시절에는 팬과 연예인이 못 만나는 게 아쉽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다. 그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만약 호텔에서 좋아하는 연예인과 보이지 않는 팬 미팅을 하면 어떨까? 체크인 시에 굿즈와 엽서를 주고, 연예인에게 쓰는 사연을 써 서, 밤에는 라디오처럼 호텔 내에서 그 사연을 읽고 대답해 주는 팬미팅. 굳이 소리를 지르며 몇 초 만나는 것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고, 팬들에게는 호텔 내에 방송 시스템을 통해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물론 회의시간에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했다가 바로 면전에서 킬 당했다. 얼음보다 차가운 총지배인은 나보고 연예인을 직접 만나야 좋지, 보이지 않는 데 누가 예약을 하겠냐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 한 편에는 보이지 않아서,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만의 추억이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화재 방송은 여전히 헬멧을 이어받은 누군가에게 불안과 초조를 주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곳. 특별한 사람이 되기보단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곳. 그만두는 직원들은 열심히 그 벽을 부스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호텔 일을 천직처럼 여기던 부총지배인도 그만두시면서 다시는 호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나 역시 호텔을 그만두면서 모든 인간관계의 연을 끊었다.


그렇게 나는 집순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또 만나서 친해지고, 알아가는 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더 낯을 가리게 되고, 미소 짓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집이 편하게 되었다. 하루에 집에서 사십보 도 안 걷는 날이 이어졌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게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싸늘해지면 늘 즐겨 찾는 수면 잠옷을 입는 것처럼 피부와 몸은 그에 맞혀서 비대해졌다.


그러다 남편이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중환자실은 늘 상상만 했던 곳이었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들어간 중환자실은 생각보다 싸늘했다. 병실은 순백의 가까운 흰색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 산소 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고 있는 환자를 보았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바깥 대기실 가득 모여있는 사람들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중환자실 1, 중환자실 2, 중환자실 3, 4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중환자실에서는 모두 한 마음이었다. 하루라도 더 살고자 하는 마음. 호기심이 허공에 부서졌다. 어떤 곳일까? 호기심 가득 차서 들어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타인과의 만남이 싫어서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보낸 내 하루는 그들에게는 간절하게 살고 싶은 하루라니.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은 다른 게 아닌 것 같았다. 구겨진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생긴 선으로 인해, 그 구겨진 종이를 피게 되는 일. 예전에는 평범하게 보내던 하루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생기는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이제는 집에만 있지 않기로 했다. 남들이 살고 싶은 하루를 알차게 살기로 결심했다. 둥글게 굴러다니던 하루를 조금 더 각지게 살아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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