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결국 계절앓이

친구도 야초도 가지 말고 내 곁에.

by 야초툰

계절이 지나감이 아쉬워서일까? 계절이 다른 계절로 가는 그 문턱마다 나는 감기에 걸린다. 그 계절을 놓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 봄이 가는구나. 여름이 오는구나. 을 몸소 체험한다. 여름엔 감기에 안 걸리는 개가 되고 싶었는데, 사계절 내내 콜록대는 걔가 되다니.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엄마는 마치 우리 집안의 비밀을 털어놓듯 나에게 말했다.

"우리 몸에 항체가 없어서 그래. 균이 들어와도 그게 친구인 줄 알고 친해지니까. 엄마도 항체가 없거든."

모든 균과 친구가 되다니. 그건 몰랐던 사실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깨끗함보다 더러움이. 정리된 곳보다는 무질서 속에 아름다움이 더 좋았을까?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때부터 감기를 계절 앓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친구를 놓지 못하는 사람이 아쉬워서 앓는 질병. 계절이 지나갈 때, 그 문턱에 서서 잘 가라고 인사하며, 흐르는 콧물을 닦는다. 여름 뒤에 바로 온 겨울에 가을은 이제 가을이 아니라 가니까 된 게 아니냐며 기침을 토해낸다. 봄이 지난여름엔 여름엔 다이어트라며, 뜨거운 물을 모래알 가득 쌓인 목구멍에 냅다 붓는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문뜩 떠오른 작은 걱정 하나, 이제 집 밖으로 나가겠다며 끊은 헬스장. 매일 빠지지 않을 거라며 나 자신과 약속했는데, 작은 두 콧구멍에 흘러내리는 콧물이 나를 붙잡는다. 만약 나도 누가 옆에서 콧물을 흘리며 운동하면 싫을 거야. 하지만 매일 빠지지 않기로 한 약속은? 머릿속이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연경 언니가 떠오른다. 타협하지 마. 너는 너의 길을 가는 거야. 변명보다 해결을 생각하라는 그 외침. 결심을 했으면 네가 어떤 상태라도 타협하지 말라는 목소리. 그래서 언니는 세계 최고가 되었겠지. 언니보다 나는.

몸에 항체도 없고, 낯을 가리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인데.

혼자 생각하다가 결국 남편에게 전화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옆에 콧물 흘리는 사람이 운동하고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남편은 단칼에 싫을 것 같다고 말한다. 연경 언니의 말에 조금 힘을 얻었던 '타협하지 마! 파'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결국 헬스장에서 운동하러 와야지 콧물만 흘리고 간 나쁜 년이 되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그 또한 후회 가득히 될 터. 아직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소파에 앉아서 눈알만 굴린다. 얼핏 그 옆에 갈색 생명체가 보인다. 야초.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단춧구멍 두 개가 번쩍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바퀴를 돈다. 아.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남편과 통화를 하는 것이, 야초에게는 아빠가 오는구나! 라는 신호가 되었다는 걸. 남편이 퇴근할 땐 늘 전화를 하니까. 갈색 털북숭이 얼굴엔 산책이라고 쓰여 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산책 거부 견이 유일하게 산책을 나가는 순간이 남편 퇴근하는 시간이었지.'

검게 피어오른 사악한 생각이 혼탁한 질문들을 한순간에 정리한다. 초록불 신호에 머릿속이 반짝인다. 나는 야초를 쳐다본다. 산책도 운동이지라고 생각한다. 초저녁, 해가 모두 들어간 아파트 단지는 나에게 헬스장이 되는 것이었다. 야초를 불렀다. 산책 끈을 들자, 야초는 아빠가 퇴근하는 줄 알고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달려온다. 야초를 속이고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네가 오해한 것일 뿐. 너도나도 운동 부족이니 어차피 이 모두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냐며 나는 눈으로 야초에게 말했다. 다만, 야초만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뿐.

현관문을 통과해 내려가 바닥에 야초를 내려놓았다.

야초는 신나게 코를 킁킁거리며 아빠 냄새를 찾는다. 퇴근하고 돌아와 자신을 품에 앉을 아빠를 상상하며. 꼬리는 헬리콥터처럼 마구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야초의 결말을 안다. 몇 분이 지나지도 않아 알겠지. 또 저년에게 당했구나. 하지만 나는 그런 야초의 뒤태를 보며 생각한다. 야초야,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잖아. 그럼, 미래를 지금 알 필요는 없어.

야초를 부른다. 야초가 좋다며 나에게 달려온다. 나는 반대편으로 야초를 돌린다. 허공을 향해 손짓한다. 저기, 저기 아빠가 있다고 손짓한다. 밤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야초는 그곳에 아빠가 있는 줄 알고 신나게 뛴다. 그 바람에 나도 뛴다. 주르륵 흐르는 콧물이 바람에 날린다.

야초와 달리면서 이 시간이 지나감이 아쉬워진다. 너와 같이 이렇게 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나간 추억에 앓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너를 더 많이 속이리라. 속으로 다짐한다. 결국 앓이를 하는 마음은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테니까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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