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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21. 2020

오직 호그와트 학생들만!

3편 스코틀랜드에 서다.

#글렌피난

해리포터 주인공들이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가기 위해 킹스크로스역에서 급행열차에 탑승한다. 그리곤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고상하고도 예스러운 증기기관차가 드넓은 자연을 배경 삼아 고가교 위를 달린다.

"글렌피난 고가교"는 해리포터 영화에서 현실세계와 마법세계를 이어주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다리"이다. 큰 아이가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그 유명한 영화도, 한글번역책도 안 보여줬었는데 참 잘한 일 같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백과사전처럼 두껍고도 두꺼운 해리포터 영문판을 읽어내는 아이가 참 기특하고, 아이가 1권의 책을 끝낼 때마다 주어지는 온 가족의 해리포터 영화 시청도 무척 즐겁다. 7권 중 5권의 책을 마무리한 채 떠난 스코틀랜드 여행,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이 고풍스러운 마법의 다리는 우리 가족에게 무척 흥미로운 장소로 다가왔다.

글렌피난 고가교로 향하는 입구. 문패처럼 새겨져 있는 "Hogwart's Student Only!"라는 누군가의 낙서가 들어서는 발길을 더욱 설레게 했다.

오직 콘크리트만을 사용해 21개의 아치로 지어진 다리는 마치 거대한 성문같았다. 그저 역사적인 유적처럼 보이는 저 곳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운이 좋으면 고가교 위를 지나치는 증기기관차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무턱대고 기다릴 수가 없어서 한참을 둘러보다가 내려왔더니 그제서야 기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이 의성어가 흉내 낸 진짜 증기 기관차 소리를 귀로나마 들으며 애써 아쉬운 마음을 누른 채 발길을 돌렸다.


#스카이섬

글렌피난에서 스카이섬으로 가기 위해 말레이그에서 운행하는 페리에 자동차를 실었다. 붐비는 주차장에 빼곡하게 주차를 하듯 페리에 일렬로 차를 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데일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 가량 운전을 해서 스카이섬의 번화가인 포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트리로 향하면서 인간이 손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끽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덤덤한 바다와 산이 둘러싼 도로를 달리면서 때때로 차에서 내려 물결이 잔잔한 곳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지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높이 솟은 산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텅 비어 쓸쓸한 듯 고요한 살아있는 자연 속에서 우리 가족만이 덩그러니 존재감을 드러냈다. 참고로 하일랜드 서쪽의 섬들 중 가장 큰 섬인 스카이섬은 1995년에 다리가 개통될 때까지 교통수단이 배 밖에 없어서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도 건물도 살 것 같지 않았던 대자연을 달려 마침내 포트리에 도착했다. 스카이섬의 번화가인만큼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이 즐비했고 좁은 거리엔 여름휴가를 나온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깡촌에서 예쁘게 단장한 청춘 남녀가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를 나설때의 설렘까지 몽글몽글 느껴지는, 그런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낭만이 있는 도시였다.

포트리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따뜻했다. 스카이섬의 매력은 소박함이다. 입이 쩍 벌어지게 사치스럽고 화려한 건물도, 누군가 예쁘게 단장시킨 인위적인 자연도 없다. 그저 스스로 존재하는 산과 바다, 들풀, 그리고 이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오래되고 단정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두 눈 보다는 마음이 호화롭고 편안한 공간이다. 피곤함과 번잡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어스름하게 빛을 발하는 노을을 즐기며 다음날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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