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바다의 오롯함_제주 中

오랫만에 들린 소소한 제주의 기록

by 세련

"바람이 웬수여"

다음날의 일정은 역시나 다이빙이었다. 내 여행의 스타일마저 바꿔놓았다고 할 정도로 다이빙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선호하던 여행지는 무조건 바다가 들어가야 했으며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닌 직접 바다로 향해 바다에 잠기고 싶어 했다. 고요한 물속으로 들어가 그 바다를 느끼고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를 느끼는 것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바다는 항상 나에게 애증적인-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는데, 아마 내가 처음 다이빙을 이 곳에서 시작했기 때문 일 것 같다.


제주도에서의 바다 일정은 보통 섬으로 배를 타고 이동하여 다이빙을 한다. 서귀포 쪽에는 큰 섬이 세 곳이 있는데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한 곳들이다. 각각 범섬, 문섬, 섶섬이다. 이 곳은 다이버들에게는 천국과도 같다.

아침에 물때를 보고 바람을 보고, 어디로 가게 될지 미리 어느 정도 보고 있는데- 바람이 심상찮다. 배는 안개나 바람, 파도 등의 영향을 받아 출항이 불가능한 날들이 있다. 이 경우 섬으로 입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선장님이나 항으로 전화를 걸어 출항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이 정도 바람이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라며 멀미약을 챙겨 먹고 있던 와 중 출항 불가능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세상에. 그 전날까지도 장판 (바다가 잔잔하다는 의미로 얘기하는 다이버들의 은어) 이라더니. 날씨 요정 아니랄까 봐 내가 와서 그렇다고 다들 타박을 한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트레이닝 대신 펀 다이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바람 방향을 보고 섬이 막아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바다에 가보니 아예 잔잔하지는 않지만 괜찮다.


준비를 하고 부이*(프리다이버들이 휴식 및 부표 역할로 사용하는 플로팅 장비)를 밀어 이동한다. 바다에 잠길 때까지 추우면 어떻게 하지- 했던 고민들이 무색하게 따뜻하다. 아마 두꺼운 슈트를 입었기 때문이리라. 얼굴에만 찬 기운이 닿아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는 기분이다.

해안가에는 냉수와 온수가 섞여 물 아지랑이들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다. 물 아지랑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눈이 흐릿해지는 기분이라 마치 술이 취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금 불편해 눈을 껌벅껌벅이며 부이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나왔을까, 바다와 제주도 특유의 갯바위들이 어우러져 청량한 느낌이 가득하다. 햇살은 가득 내려쬐고, 바다는 온통 파랗다. 펀 다이빙이었기 때문에 수심은 많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바닷속에는 많은 물고기들과 소라들이 있다. 이 곳에서 엄청나게 큰 돌돔을 봤는데, 돌돔이 그렇게 큰 것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

물론 나는 그린 다이버니까, 채취는 물론 잡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은 그렇게 존재할 때가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같이 간 강사 동기 오빠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조류를 타고 흘러가기도 하고- 가져간 모노핀을 신고 사진도 찍었다. 점점 바람이 거세져 파도풀장에서 물을 맞는 기분이다. 한 가지 다르다면 짠 기운이 가득한 물이라는 것 정도. 바람에 물에 세탁기마냥 통돌이 되다 보니 고개를 밖으로 빼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꽤 흘러서 부이 정리를 하고 다시 물 밖으로 나간다. 아쉽지만 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내일의 트레이닝을 기약하며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마무리했다.



"트레이닝, 추위와의 싸움"

오늘의 일정은 트레이닝 하나만이 있었다. 어제 파도가 너무 거세어 나가지 못한 섬으로 배를 타고 가서 트레이닝을 하는데, 얕게는 10m부터 깊게는 40~60m까지 나올 때도 있어 수심 트레이닝을 하기에 좋다. 다만 추위가 가장 걱정이었다. 깊은 물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있지만 어제의 바람이 태풍급 바람이었고, 덕택에 바다는 온통 뒤집어졌으리라. 아마 수온도 꽤나 떨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겐 오랜 시간 바람을 맞으며 있는다는 것 자체가 조금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날씨는 매우 쾌청했다. 이래저래 물 때 맞추기가 어려웠다. 수심이 필요한 트레이닝을 할 때는 물 때를 맞춰 가야 하는데, 2시 즈음이 간조였다. 보통 오전에 다이빙을 하고 쉬는 프리다이버들의 스케줄과 잘 맞지 않았다. 이러네 저러네 하다가 결국 조금 애매한 시간에 다이빙을 하러 나섰다. 항구로 이동하는 길에는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는 꽤나 많은 지인들이 내려와 있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부터 잠시 다이빙을 하러 내려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이버들은 다 같이 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곤 한다. 항에서 아는 지인을 만난 후 잠깐의 인사를 하고 섬으로 향했다. 교육생을 데리고 오신 프리다이빙 강사님이었는데, 이미 본인은 다이빙을 다 끝내고 정리하고 나오는 참이란다. 교육생들이 많이 추워하고 바다가 어떻고~ 얘기를 하시길래 대충 흘려듣고 명부를 작성하러 갔다. 섬까지 가는 동안 항상 타는 배임에도 불구하고 간만의 바다라 그런지 콩닥대는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섬에 도착해 짐들을 내린다. 한 번 다이빙 가려고 준비하는 장비들은 거의 세 사람이 들고 다녀야 될 정도의 양이기 때문에 몇 번이고 끙끙거리고 내린다. 짐들을 정리하고 장비들에 이상이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한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기운이 꽤나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추위에 대한 걱정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부이를 밀고 먼저 다른 강사님이 이동을 하고, 천천히 뒤따라 가려는데- 입수하는 순간 아뿔싸.... 슈트가 나에게 컸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물이 온통 안으로 들고 들어와 체온을 빼앗겼다. 이대로라면 추위에 벌벌 떨 일은 눈에 자명히 보이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열을 내보려고 별 일을 다했지만 몸은 사시나무 떨 듯 속절없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그냥 나가버릴 수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부이 세팅이 마무리되어 가볍게 웜업을 했다. 그래도 올라갔다오니 한결 낫다. 오히려 물속에 있을 때 더욱 따뜻한 느낌과 함께 슈트가 찰싹 몸에 붙어 더 따스하다. 다이빙 계획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웜엄, 다시 웜엄, 그리고 FRC. 추위도 추위지만 간만의 바다라 그런지 온통 엉망진창인 다이빙을 하는 느낌이다.


몸이 안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과감히 다이빙을 포기하는 게 맞다. 오늘 다이빙은 여기까지 하겠다고 선언했다. 애매한 시간에 와서 물이 온통 빠져버려 수심도 나오지 않는다. 계속 바텀 웨이트(바닥추)가 갯바위 바닥에 걸리고 닿아 팔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잡아당기고 끌어올린다.

물속에서 온 몸을 움직이며 끌어내기가 참으로 버겁다. 헐떡거리며 걸리는 바텀 웨이트를 끌어올리는데, 섬 근처는 원래 조류가 강하게 흐르다 보니, 조류에 따라 줄이 휘이익 휘어지고 당겨내는데 애를 먹는다.

한참 고생을 하니 진이 완전히 쑥 빠져버렸다. 바다의 홈통 안 쪽으로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고 가벼운 펀 다이빙을 하고 마무리했다.


섬에 오르니 그제야 다시 추위가 몰려온다. 배를 부르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 오는 배가 그리던 님보다 반갑다. 몸살이 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배에서 내릴 때는 완전 기운이 빠져버렸는지 털푸덕 넘어지기까지 했다. 제대로 된 5mm 슈트를 입지 않고는 다이빙하기 어렵겠다며 구시렁댄다.

그래도 바다가 그리운 건 매일 같다. 가끔은 이렇게 나랑 너무나도 안 맞고 실망스러운 날도 있지만.




"성산일출봉으로"

다음날이 되었다. 여전히 날씨가 매우 좋다. 이번 여행에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우산도 챙겼는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화창하다. 제주도는 서울과 다르게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낮에는 아우터 없이 다녀도 괜찮을 정도고, 밤에는 아우터 하나를 걸치면 딱 맞을 수준이다. 다만 바람이 조금 있어 바람막이 같은 스타일을 입으면 좋은 느낌.


다행스럽게도 아우터를 두벌이나 가지고 와서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친구들에게 몇 자 가볍게 연락을 남겼다. 조금 더 시기가 잠잠해지면 같이 제주도로 또다시 여행을 가자고 얘기했다.


서귀포에서 성산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성산 쪽에 보고 싶었던 곳들- 가고 싶었던 곳들도 들리고 싶었다.

성산일출봉 앞의 너른 들판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봤다. 해녀 할망들이 한창 작업들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여자로 사느니 차라라 소가 낫다고 한다. 억세고 강인하지만 그녀들의 인생은 고통이 아닐까. 내가 그녀들로 살아본 적이 없기에 함부로 그녀들의 인생을 논할 수 없지만 나라면 하루도 못 채우고 울면서 돌아갔을 것 같다. 녹록지 못한 삶의 현장 근처에 서서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한 참 그네들을 지켜봤다.


지인을 만나기까지 시간 여유가 조금 있어 근처 카페에 들어가 보니 칵테일을 팔고 있어 진하게 한 잔을 타 달라 하여 마셨다. 간만의 블랙러시안이다. 달달한 커피 리큐르 속에 타들어가는 보드카의 진함이 목구멍을 가득 타고 내린다. 단 맛에 취해 먹지만 속은 가득하니 쓰고 타들어간다. 그래서 내가 이를 좋아한다.

카페는 굉장히 좋은 풍경을 자랑했다. 한쪽은 우도, 한쪽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이 없는 건 아니라 그래도 붐비는 모양새였다. 사람들은 연인, 가족끼리 모여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웃고 떠든다. 보고 있자니 참으로 내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진다.


카페에 계속 앉아있기 답답해 그냥 산책도 할 겸- 바다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이동했다. 성산일출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곳이 바로 광치기 해변인데, 예전에 새벽 일찍 나와서 여기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어 들리고 싶었다. 새벽이 아닌 낮은 어떤 풍광일지도 궁금했고. 물이 많이 빠져 광치기 특유의 초록한 이끼 들과 돌들이 듬성듬성 잘 드러나 있었다. 광치기에 앉아 예전 기억들을 그리고 있으니 애달프으면서도 묘한 기분이 가득하다. 해변에 서있다 조금 더 가까이 바다로 가고 싶어 조금 더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렇게 이끼 풀 위에 잠깐 앉아 멍하게 바다를 바라봤다. 바람이 가득하고 주변은 고요하고, 바다는 항상 그립다.


서울에 있을 때도 혼자의 시간을 가지기란 참 어려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고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못 버텨하기 때문이 아닐까. 익숙하고 누군가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내 고향 같은 곳이 아닌, 타향에서 비로소 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혼자 오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 같다.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따금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며 그곳에 서 있을 때, 나는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여기에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좋다.



"밤, 별, 그리고 오름"

저녁엔 오름을 올랐다. 사실 제주도에서 오름을 등반하는 건 처음이다. 오름 입구까지만 가서 이런 게 오름이구나 싶었던 적은 있었지만 왜 그랬던지 오름을 올라가 볼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예전에 금릉 쪽에서 오름을 한 번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차로 올라갔던 오름이기 때문에 제외했다.


특히나 밤에 오름을 오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슨 밤에 오름을 가?라고 질문하던 나의 답변에 랜턴을 들고 가면 또 밤에 오르는 그때만의 느낌이 다르다는 대답이 왔다. 별 보는 것도 좋아하고, 밤늦은 시간에 자연 속의 고요함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반가운 일이긴 했다.


근처에 있는 용눈이 오름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왕복 2차로의 길이었는데, 사람이 없어 신나게 내달려 오름으로 도착했다. 이제 오름 등반의 시작이다. 우리말고도 오름을 오르는 다른 일행들이 있었는데, 오름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요새 꽤 있다고 한다. 춥지 않을까 싶어 서울에서 입고 간 털 코트를 입고 한쪽 주머니에는 랜턴을, 다른 주머니 속엔 엊그제 산 맥주를 한 캔 넣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나는 걷고 있었다. 랜턴이 당장은 무색할 정도로 오름을 오르는 길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오름이라 그런지 잘 정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가는 길에는 말을 방목해놓아 말을 볼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


오름을 오르는 동안에 빛은 점점 사라져 랜턴 없이는 내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달 하나 없는 밤이라 랜턴을 끄고 걸으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다. 달이 없어 별이 슬그머니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별자리들을 랜턴으로 가리키며 별자리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바람에 가을 냄새가 진득하게 묻어있다. 아마 겨울의 끝자락에 머무르던 들판의 냄새가 봄같이 느껴져서 그러리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오름 정상이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다른 팀은 이미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바람 가득한 오름 정상에 올라 아까 가지고 올라온 맥주를 땄다. 열심히 걸어 올라오느라 시원한 맥주가 그리울 찰나였지만, 맥주는 따듯한 털코트 안에서 이미 너무나도 많이 식어있었다. 밍밍한 맥주를 두어 모금 들이키니 헛웃음과 함께 그래도 이 것 나름 희한한 추억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름 정상엔 흙이 드러난 부분이 많아 바람이 날릴 때마다 흙내음 가득한 바람이 핑핑 돌았다. 그냥 바람에 기대어 서보기도 하고 바람 부는 정상에서 어스름프릇하게 보이는 섬들과 바다를 바라봤다. 미지근한 맥주를 먹고선 다시 내려오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날씨가 조금 더 맑았으면 별이 더 많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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