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바다의 오롯함_제주 上

오랫만에 들린 소소한 제주의 기록

by 세련

"한 때 제2의 고향이었던"


작년 한 해 동안 제주도를 꽤나 많이 갔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다녀올게요- 라며 퇴근 후 제주도> 저녁+술 > 아침 서울 출근을 한 적도 있었고, 심심하면 제주도에 가던 통에 친구들이 제주도에 집 샀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주도에 대한 애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아마 새로운 취미와 생활들에 익숙해지며 제주에 대한 편함과 그가 주는 설렘을 잊었을 터였다.


작년은 정말 계획적으로 제주도를 갔다. 프리다이빙 핑계도 있었고, 투어도 있고 놀러도 갔다.

사실 나는 제주도에 아는 지인들이 많이 있는 편이라서 남들보다 더 자주 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각설하고, 요새 들어 몸이 안 좋은 것도 있었고 답답한 것도 있었고. 제주도에 있던 지인들도 막상 보려고 하면 보기 어려운데 이번에 좀 많이 시간들이 맞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과거 제2의 고향에 가기로 했다.

2개월 반만이다.



"뭐할 건데?"

사실 제주도에 많이 가긴 했지만 뻔질나게 드나드는 정도는 아니고, 의외로 제주도 관광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남들 다 가본다는 사려니 숲길도, 한라산도 안 가봤다. 그냥 좋은 바다가 있으면 바다 근처에 있고 바다내음을 맡으며 뛰기도 하고 그냥 숙소에 처박혀 잠을 자기도 한다.



이번 여행도 약간 즉흥적으로 잡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뭘 할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출발하기 며칠 전 즈음 지인들과 일정에 대한 약속을 잡고 스케줄을 조정했다. 그래도 어디서 어떻게 잠을 자야 할지는 정해야 했으니까. (나는 숙소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숙소 선택에 여행의 80% 정도의 힘을 쏟는다. 숙소 추천 후기글이 있다면 눈여겨보시길. 정말 엄선한 숙소들만 올린다. 그만큼 까다롭다.) 일정은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괜찮게 흘러갔다. 일정을 얼추 짜고 나니 나의 고질병이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바로 무언가를 안 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는 병이다. 콘셉트가 '아무것도 안 하기' 여도 나는 어떻게 어디에서 아무것도 안 할 건지를 고려한다.

왜?라는 질문에 '그냥 병이야-'라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출발을 앞두고 무엇을 할지 또 정한다.



제주도에 대해 많은 관광정보를 찾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았다. 이건 너무 식상하고, 이건 서울에서도 할 수 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의 여파로 에어비앤비에서 제공하는 체험은 문을 닫아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선택하여 일정에 유일하게 예약을 하고 끼워 넣은 게 있으니, 제주 901에서 진행하는 '901 힐링타임'이라는 클래스였다. 새해맞이 계획 중 가장 실천을 잘하고 있는 게 바로 '요가'인데 의외로 요가가 주는 스트레칭과 가벼운 명상 근력운동도 되는 교정의 느낌들이 좋다. 과거 요가는 재미없다고 얘기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요기니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혼자서는 안 한다는 것 정도?

어쨌든, 이렇게 요가에 빠져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에서의 일정도 요가 쪽을 알아봤다. 모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요가를 한 이후로 꽤나 요가 붐이 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괜찮은 요가원과 클래스들이 있었다. 제주의 따스한 햇살과 요가라니,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요가에 대한 얘기는 더 하고 싶지만 나중에 또 풀어봐야겠다.



"제주 901 힐링타임"

제주 901은 숙소, 카페,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총 세 군데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중에 내가 신청한 것은 901 힐링타임이라는 원데이 클래스. 901 힐링타임은 메디 스트레칭, 명상, 비건 브런치 이렇게 세 가지로 이루어진 구성인데- 요새 명상류에 가장 관심을 가지던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게다가 센터 사진을 봤을 때, 넓은 통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공간이고- 공간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나는 내용과 구성이 어떻든 간에 가보고 싶은 공간인 것도 있었다.

901 센터에 연락을 해 예약을 하고 입금을 하면 된다. 사진을 보니 여러 명이 수업을 듣기도 하는 듯했는데, 내가 간 날은 평일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준비물은 그저 편안한 복장. 요가매트가 있으면 개인 것을 가져가도 된다. 나는 내 요가 타월이 있어서 들고 갔는데, 깜박하고 제주 프리다이빙 샵에 두고 와 버렸다. 덕분에 요가매트를 사야 되느니 어쨌느니 하며 유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힐링타임의 시간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동되는데, 내가 간 시기는 10:00에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서귀포에서 만날 지인분과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기에, 공항으로 날 픽업하는 김에 제주 901에서 수업을 듣는 일정을 하자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정말 이른 새벽에 집에서 나와야 했던 것.


덕분에 2시간 자고 피곤에 찌든 몸으로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갔다. 비행기 안에서 꼬박 지새우고 온 제주도는 상큼하지만 약간은 쌀쌀한 느낌의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날씨가 많이 풀렸던 터라, 입고 간 털코트가 무색하게 공항에 서 있었다. 곧 도착한 지인분은 내 털코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스크에 털코트, 누가 봐도 지금 막 서울에서 내려온 관광객 차림이더라. 잠깐을 달려 9시 즈음 근처에 도착했다.


제주 901은 제주시에서 가깝다. 노형에 위치한 도깨비도로에 있었는데, 6년 전쯤 이 곳을 방문했었던 기억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느낌의 과거와는 다르게 동네에 이것저것 뭔가가 있었는데- 편의점에 들렀다가 본 옆의 카페가 아는 지인분이 운영(?) 했던 곳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런 곳에 살면 좋겠다."

도착한 센터의 겉모습은 생각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앞에는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사람 같은 리트리버 한 마리가 무심한 듯 좋아하는 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격 좋은 친구.

사진들을 찍고, 잠깐 제주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서울과 다른 푸릇한 느낌들이 가득한 곳. 회색 건물이 아닌 푸른 나무로 들어찬 제주도는 일반적인 시골 느낌과는 또 다르다. 들판이 펼쳐져 있는 느낌이 많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우리나라는 어딜 봐도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넓게 펼쳐진 초원이 언제나 나에게는 묘하게 다가온다.


예전에 처음으로 유럽에 갔을 때, 도착해서 이모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피곤해서 칭얼대는 나에게 엄마가 창밖을 보라고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보라고 한 창 밖에는 하늘 가득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에 해가 땅으로 내려앉는 모습은 산너머로 넘어가는 모습만 보던 나에겐 꽤나 인상 깊은 내용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광활한 공간 어딘가에 있으면 아름다움을 느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곳은 한라산 자락에 위치해 제주의 산과 자연을 느끼기에 좋다. 리트릿 (retreat) 공간이라고 얘기하는 901은 그 공간에 충실하리만큼 아름답고 녹아든다.


아래는 901의 소개문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몸과 마음을 살피고 비울 수 있는 힐링타임이라는 체험을 준비했습니다. 901 힐링타임은 자연의 "순환"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만들었으며, 몸의 순환에 초점을 맞추어 요가 동작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스트레칭과 마음을 잠시 비우고 내려놓을 수 있는 명상을 하도록 합니다. 명상 후에는 몸을 비울 수 있는 비건 브런치를 하며 마지막 힐링 시간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하 중략)


이런 공간에 있다면 내 마음마저 너그러워진다.

순환-이라는 모티브로 만들어진 901. 그래서 901 이란다. 가득 찬 것을 비워내야 다시 채울 수 있도록. 순환.

나를 비워내는 시간. 그리고 비워낸 만큼 다시 건강하게 채울 수 있도록.




"요가는 아니지만"

수업은 4인 이서 단출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맞는 수업 인원으로 진행되었다.

소개문에서도 말했듯, 요가라기보다는 스트레칭에 가까운 동작들과 약간의 근력적 운동들이 가미되어 있었는데- 난이도는 중하 정도이다. 유연도가 부족한 남자분들은 고통받으실 수 있었던 듯하고, (아직까지 유연도가 좋은 남자분들을 본 적이 없다.) 근력적으로 약한 여자분들이라면 다음날 몸이 뻐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어렵지 않고 운동을 조금 했다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부분들, 그리고 이 공간이 주는 감각적인 느낌은 한 번쯤 꼭 느껴보면 좋을 만하다.


시작하기 전 선생님의 간단한 이야기들과- 스트레칭들, 평소 오전마다 요가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몸이 말랑해진 감이 있어 그래도 그럭저럭 따라갔던 것 같다. 바깥은 매우 따뜻했는데, 건물 내부가 더 추운 때라 약간 오들오들하던 느낌이었다. 특히 명상하면서 누워있을 때는 더더욱. 지금 계절엔 긴팔 복장을 했었어야 했나 보다. 매 번 추위로 인해 금방 힘들어하면서 이렇게 후회할 일을 만든다. 평소 명상을 자주 하는 편이긴 하지만- 피곤함과 추위에 나 스스로 오롯함을 느끼기까지 참 힘겨웠다. 명상도 내가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니. 참 나는 촉각적인 부분에 약한 생물인가 보다.


다이빙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이나, 이런 내용은 참 좋다 싶은 내용들도 있었는데- 마지막 앉은 명상시간에 주신 반원 모양의 시트는 참 유용한 것이었다. 척추를 조금 편하게 세울 수 있는 도구였는데 앉아있으니 참 편하더라. 요가를 배우며 가장 좋았던 것들은 시작 전 잠깐의 호흡, 그리고 마지막 사바아사나 시간이었는데- 프리다이빙은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프리다이빙을 사랑하는 것 일지도. 물 위에 떠 나에게만 집중하는 호흡을 하는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없다. 숨쉬기를 참 좋아하는 나.


수업이 다 끝나고 걷기 체험을 하였다. 날씨에 따라 변동이었는데- 우리가 했던 날은 약간 쌀쌀한 감이 있어서 그랬나 딱히 진행을 해주지 않으셔서 그냥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있으면 해 볼 수도 있고, 평소 신발과 양말을 항상 갖추고 있으니 맨발로 걷는다는 것 자체의 기분도 느껴보고 싶었다. 처음 구간부터는 힘들어서 끙끙하더니, 중간쯤부턴 익숙해지고- 마지막 즈음엔 부드러운 잔디가 깔려있는 구간이 있었다. 잔디가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좋았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자연 속에 내가 나로서 서 있는 느낌. 나는 이 기분을 사랑한다.




"비건이 되기엔 나는 고기를 너무 사랑해"

모든 일과가 종료되면 2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비건 브런치가 제공된다.

카페에는 일반 손님도 많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을 때라 자리가 붐비었다. 창가엔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게 들어왔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건강한 느낌의 식단을 즐기고 있었다. 세트뿐만 아니라 단품 종류도 있는데, 다음에는 아보카도 샐러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부의 디자인은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박한 오두막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의 디자인들. 그리고 루프탑이 있는데, 루프탑엔 빈백들과 마찬가지로 오두막에 온 것 같은 느낌들이다. 생각해보면 많은 양의 디스플레이 소품들이 있음에도 정신없거나 과하다는 느낌은 없고 적당히 꾸며진 상태. 아늑하게 오래오래 있을 카페는 아니었지만 비건 카페에 이 분위기라니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까.



비건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진 적은 없고 나는 고기를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비건이 되기는 틀렸다는 생각만 하곤 한다. 제주에서 자라난 로컬 재료들과, 유기농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정말 진정한 비건 음식만을 제공한다. 드레싱마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힐링타임에 제공되는 브런치는 버섯 샌드위치와 샐러드, 그리고 디톡스 스무디. 여기에 커피나 차를 선택할 수 있다.


단연코 여기에 차를 선택하라고 말을 하고 싶은 이유는, 차의 선택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차가 준비되어 있다) 직접 말린 것으로 추정되는 재료들을 넣고 물로 우려서 나온다. 이왕 비건 브런치에 대해 체험해보고 싶다면 커피보다는 차가 더 잘 어울리는 음료가 아닐까. 그릇도 정갈하고 깔끔하게, 인 xx 용으로 찍으면 딱 예쁠 모습이다.


샐러드는 특이한 드레싱에 (맛이 강하지 않다.) 처음 보는 풀들이 있었는데, 배가 고파 허겁지겁 샐러드로 먼저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버섯 샌드위치는 먹기 참 어려웠다. 심심한듯한 맛인데, 버섯이 가장 고기와 씹는 맛이 비슷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먹어보니 고기 씹는 것 같은 식감이다. 디톡스 스무디는 키위 같은 맛이 난다. 요플레 같은 느낌의 견과류들이 오도독한 게 맛있다. 매일 아침 누군가가 차려준다면 나도 훌륭한 비건이 될 것 같은 느낌들.




"제주, 유채꽃, 관광객이 된 느낌"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 일과 이후로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짐을 풀고 내일 다이빙 준비를 조금 하면 되는 정도.


서귀포로 내려가야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어딘가 갈 만한 곳이 없나- 싶어 가게 된 사계 해수욕장.

제주도를 많이 왔지만 남동쪽은 제대로 와본 적이 없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가는 여객선이 있고, 형제섬과 송악산이 어우러져 제법 제주스러운 느낌을 낸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다. 제주도는 유채꽃 시즌이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제주도는 벚꽃이 벌써 핀다고 얘기했다. 관광객들은 까르르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같이 간 지인 분이 유채꽃이랑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 한다. 관광객이 된 느낌을 받으며 꽃 옆에서 한 껏 웃어본다.

봄의 제주도는 항상 행복한 기억들의 공간이다. 친구들과 함께 웃던 기억들이 가득한 봄의 제주. 사진이 잘 나왔다고 보여주는데, 화장도 안 하고 잠도 못 잔 상태인 것치곤 예쁘게 잘 나왔다. 봄 느낌이 한가득 와서 내게 안긴다. 유채꽃의 지린내가 자꾸 코 끝을 맴돈다.



유채꽃을 뒤로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 내내 보이는 푸른 바다, 더운 차 안의 공기들이 내가 제주에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피곤했는지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씻으니 도로롱 도로롱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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