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바다, 인도네시아_ 코모도 국립공원 여행기
인도네시아는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곳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이 없었다.
여행을 가고자 할 의도도 없었고 어디에 있는지 조차 정확하게 깨닫고 있지 않았다. 아마 현재도 좋아하는 프리다이빙을 즐기면서 필리핀에 자주 가다 보니- 해외에 나갈 때마다 물놀이가 있는 곳을 따지게 되고, 결국 편하게 들락날락할 요령인 필리핀(세부)에 익숙해져 있던 것 같다.
인도네시아- 그것도 남들이 자주 가는 발리가 아닌 코모도 국립공원에 가게 된 건 아주 우연찮은 일 때문이었다. (물론 발리를 경유하고 여행이 끝난 후 발리에 잠시 머물긴 했지만) 그 당시 나는 주변 프리다이버들과 어울리기 위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분이 투어에 초대하게 되어 가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리브어보드!(Liveaboard)
리브어보드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배를 타고 일정 기간 동안 계속 다이빙을 하며 숙식을 하는 코스이다. 보통은 배를 타고 나가 다시 육지로 돌아와 숙식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먼 거리에 포인트가 있거나 포인트들이 한 곳에 뭉쳐있을 때, 혹은 국립공원류라 숙박시설 종류가 없을 때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리브어보드를 하곤 한다.
EAT, SLEEP AND DIVE. 정말 자고, 먹고, 놀고, 다이빙 밖에 안 한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지만 취득을 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고 로그수* (다이빙을 한 횟수. 공기통 1 탱크당 1 로그로 친다*)가 30 미만인 아주 꼬꼬맹이 다이버였기 때문에 (물론 프리다이빙을 하긴 했지만) 주변에서는 꽤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뜬금없이 초대된 이 스쿠버다이빙 투어는- 내가 나의 지인들을 몇 명 더 부르며 어느 정도 파티를 구성해 갔고 투어를 주관하는 강사님들과 사전 모임들을 가지면서 꽤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큰 생각이 없었고, 별 다른 기대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관심이 없었으며,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큰 욕구도 없다. 아마 이 여행을 승낙한 큰 이유는 그 당시 내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고 도피처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그냥 '저도 갈게요.'그렇게 돼버린 경우였다. 그리고 이제는 알 수 있다. 가끔 내가 그렇게 도피하듯 떠나는 곳은 나에게 큰 무언가를 남기는 곳이라는 걸.
코모도 국립공원은 발리에서 가깝다. 우리가 이용한 루트는 인천> 발리> 라부안바조로 이동하는 비행기 편이었다. 발리의 첫인상은 습하다, 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라는 이미지였다. 8월의 날이었기 때문에 겨울로 들어서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습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일 처리가 늦은 건지- 아니면 비행기 여러 대가 한 번에 들어와서 인지 입국심사를 받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도착했을 쯤에는 저녁이었기 때문에 뭐가 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숙소에 도착해 가볍게 식사를 하고, 외출을 했다. 식사를 하는 도중 비는 그쳤지만 어둑한 거리에 불 빛만 환하니 빛에 취해 어지럽다. 비가 내렸던 것 때문이었을까- 밤의 발리는 쌀쌀했다. 아마 그 당시 한국의 여름 날씨가 정말 살인적으로 더웠고, 덕택에 더운 지방인 발리에 와서도 26도 정도밖에 안 되는 기온에 쌀쌀함마저 느꼈을 터였다. 중간에 식당인 듯 한 라이브 펍이 있어 들어갔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고, 식당 가운데에는 3인조의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둥둥 울리는 베이스 소리를 귀 담아 들으며 사람들과 모여 앉아 맥주도 마시고 서로 대화도 나눈다.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나름 스쿠버다이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그런지 이야기들이 곧잘 통한다.
맥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다시 추위가 몰려온다. 숙소까지 다시 걸어가는데- 가게 입구에 뭔가 예쁜 꽃장식이 놓여있다. 발치에 치일까 조심스레 이동하는데, 그제야 생각이 난다. 아까 있던 가게 앞에도 있었구나 싶던 그것. 이 곳의 힌두 문화는 참으로 독특한 음색을 풍긴다. 뭔가 발리의 그 묘한,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이미지와 비슷하다. 조금 더 자세히 알면 신기하고 또 아늑할 것 같은 느낌들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관광지화 되어있던 동네. 코모도에서의 스쿠버 다이빙이 끝나고 나면 다시 발리로 돌아와 며칠간 더 체류하기로 했다.
그때 조금 더 발리에 대해 알아 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내일을 청했다.
코모도 국립공원은 발리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며 코모도 도마뱀으로 유명하다. 스쿠버다이빙으로도 특히 유명한데, 코모도는 강한 조류와 풍부한 산호초들 그리고 다양한 생태계로 특히 '만타레이'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대물 중에 하나다.
코모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리에서 국내선을 타고 라부안바조로 이동해야 했다. 라부안바조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이 라부안바조의 국내선의 악명은 참으로 높다.
라부안바조까지 가는 비행기는 매우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다. 타고나서 세어보니 대략 5~60명 정도가 정원이 아닐까 싶은 정도의 비행기. 탑승교를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걸어가서 타야 했던 경험도 굉장히 독특했다. 아침시간이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해가 떠오르는 따사로움과 함께 거대한 (평소 타던 비행기에 비하면 작지만) 비행기에 탑승하러 삼삼오오 떠나던 느낌이 새록새록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와중에 밑을 바라보니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곳곳에 섬들이 산재되어 있다. 바라만 봐도 두근거리는 여행의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라부안바조 공항은 매우 작은 곳이었다. 공항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느낌에 '엥..? 여기가 공항..?'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생에 있어 이런 공항은 처음이었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수화물 벨트는 정말 조그마했고, 일일이 사람들이 수동으로 올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라부안바조 국내선은 악명은 작은 공항으로서가 아니다. 보통 공항의 악명이라 함은 연착- 정도가 에피소드일 텐데 이 국내선의 악명은 '짐이 안 온다는 것'이다. 실제 코모도 여행기에 대한 정보를 얻어보면, 짐이 안 왔다는 케이스들이 꽤 있었고 어떻게 해야 짐이 잘 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글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랜덤'이라는 것이 통계적인 이야기였다. 우리 일행 모두 나와 태연스럽게 내 짐은 오겠지~ 라며 웃고 있던 와중 벨트가 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짐들이 나오고, 내 짐도 무사히 있었다. 지인들의 짐도 하나씩 찾아가고 서로의 짐을 찾아가 주는 와중에 갑자기 벨트가 멈춰 섰다. 사람이 손으로 올리다 보니 짐이 밀리거나, 혹은 한 차로 다 싣고 올 수 없어 두 번째 차가 오느라 늦어지나 싶어 다들 조용히 다시 벨트가 돌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갑자기 수화물이 나와야 하는 곳으로 사람이 나온다. '뭐지?' 싶은 이 상황에 공항은 적막감 만이 감돌고 다들 수화물 대신 나온 사람을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수화물 맨은 이제 수화물이 다 나왔으니 돌아가시라는 얘기를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
웅성웅성 내 짐이 안 왔네 반만 왔네 하는 와중에 일단 먼저 배로 가서 있으면 직원들이 알아서 수화물 표랑 교환해 준다고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는 듯, 리브어보드의 직원들은 본인들이 남아 수화물을 가지고 온다. 그들의 표정은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같이 간 지인 중 하나는 울상이다. 이 분은 총 두 개의 수화물을 붙였는데, 하나는 본인이 대리로 맡아준 짐이고 하나는 본인의 짐이었다. 그런데 대리로 맡아준 짐만 왔다고 한다. 심지어 그 대리로 맡아준 짐의 주인은 아직 발리에 있다. 수화물이 잘 안 온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 더 늦은 비행기로 오면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하기에 미리 짐을 붙인 것인데 정작 본인의 수화물은 오지 않고 엉뚱한 사람의 짐만 왔다.
어쩔 수 없이 배로 향하는 와중에, 발리보다 뜨거워진 태양 볕이 느껴진다.
라부안바조에 도착해 우리가 탈 배로 이동했다. 배는 상당히 크고 코모도에서 운항하는 배 중에서는 컨디션이 꽤 좋은 배로 유명했다. 보통 리브어보드를 타게 되면 삼시 세 끼와 간식들을 챙겨주는데,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안주와 술, 음료수 등이다. 이동 중 두 그룹으로 나누어 마트에 갈 그룹과 배로 갈 그룹을 정했다. 리브어보드 기간 먹을 간식거리들과 음료들을 구매하기 위함이다. 보통 리브어보드에서는 술과 음료수는 돈을 받고 판매를 하는데, 우리의 일정인 7일간 머물며 음료를 사 먹을 경우 어지간히 큰돈이 아닐 수 없기에- 콜키지를 내고 술과 음료를 반입하는 방식으로 조율을 했다고 한다.
라부안바조는 작은 동네다. 큰 마트가 아닌 우리나라 개인이 운영하는 마트 정도의 크기의 가게들이 세 군데 정도 있었다. 같이 간 강사님이 물건들을 구매하시며 한 말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음료와 맥주가 모자라 가게들을 전전하며 3군데 정도 가게를 들리고 마지막 가게에서는 물건이 모자라 막 들어온 상하차 트럭에서 맥주를 아예 빼들고 가기까지 했다.
나는 20명 가까이의 인원이 7일간 먹을 정도의 술과 음료수 양이 계산이 되지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맥주와 음료수의 상자를 옮기며 이걸 다 먹을 수는 있는 건가, 너무 많이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생각나던 건 '역시 더 담았어야 했구나.'라는 말 뿐이었다.
배를 항에 바로 대지 않고 연안에 정박시킨 후 딩기*(작은 보트*)를 타고 짐을 실어 배로 이동한다.
배 멀미가 나면 어쩌나 싶어 미리 멀미약을 가득 챙겨 먹었다. 우리 배를 사진으로는 봤지만, 항구에 도착하고 나니 강한 햇빛 탓에 어디에 있는지 판단이 되지 않아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딩기를 타고 이동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스치고 딩기가 달릴 때마다 살짝씩 물살이 튀어 오른다. 그리고 곧이어 거대한, 당분간 내가 생활할 배가 보인다. 배 가까이로 다가가자 얼마나 커다란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렇게 큰 배를 타본 적이 있던가? 국내에서 제일 큰 배라고는 울릉도 갈 때 탔던 쾌속선이 다 일 것이다. 딩기를 배 옆으로 붙여 배에서 내려진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우리를 환영하는 크루들, 그리고 목조로 만들어진 배인 탓에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딩기에서 내려 계단 중간에서 옆을 바라보니 파아란 바다와 수많은 배들이 눈에 띈다.
'아, 정말 내가 다른 세계에 와있구나.'
마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온 배경의 일부를 뜯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볼 때와 다른 것이라면 왠지 포로가 된 느낌이라는 것 정도..?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니 멋들어진 배의 본모습이 보인다.
배에 탑승이 끝나고 다 함께 인사를 나눌 겸 앉은 식당에서 비로소 내가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평소에 머무르던 단단한 대지가 아닌 계속해서 움직이고 둥실둥실한 느낌의 바다. 큰 배임에도 불구하고 바닷물 살에 출렁출렁하는 느낌이 굉장히 묘하다. 배에서 이용할 방을 배치받고 크루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다이빙 일정, 식사 시간,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짐을 풀고 다이빙을 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배가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는 바다와 흔들흔들하는 객실들에 생각지 않던 마음도 두근거린다.
코모도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선 덱에서 보냈다. 방이 로우 덱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지만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바람을 맞고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선 덱에 있으면 내가 가고 있는 모든 풍경들이 보인다. 탁 트인 시야와 시원한 느낌들. 주변은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어렵고 이따금 우리와 비슷하게 여행하는 배가 지나가곤 한다. 리브어보드를 타고 이동할 때는 대부분 자고 있는 시간에 배가 많이 이동하고,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에는 조금씩 슬슬 움직이거나 포인트에 정박해있다.
코모도의 풍경은 참으로 이국적이었다. 항상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오후 시간이면 선 덱에 발을 딛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시원한 듯 차가워서, 그늘진 곳에 앉아있으면 반팔 반바지로는 추워서 뭔가를 덮어야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특이했던 건 모든 자연들이었다.
이 곳은 항상 파란 바다의 일색이었다. 이따금 연안 쪽으론 흔히 말하는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지만 푸르른 바다가 대부분이었다. 이 바다에서는 조류가 계속 흘러 바다만이 만들어내는 모양들이 펼쳐지곤 했는데, 파란 옷감에 어떠한 기법을 표현해 반복적인 모양을 만들어 내 듯 조류끼리 서로 맞물리고 펼쳐지며 생기는 모양들이 마치 춤을 추듯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반면 황량하기 그지없는 구릉들엔 바짝 마른 건조한 가시나무들이 듬성듬성 생을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황토 빛 산이란 이런 것들을 일컫는 말일까 싶을 정도로 척박한 느낌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그로 인해 익어버린 대지, 가장 쓸쓸하고 황폐한 곳에 가장 풍요롭고 포근한 곳이 함께 하는 이 느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것을 자연스러웁게 섞어 놓았다. 온통 물이 가득한 사막이다.
선 덱에 누워 있노라면 내 피부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파고드는 바람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곤 한다. 누구보다강인한 태양과 드높은 하늘, 그리고 이 적막감이 감도는 대비 속에서 몸을 웅그리고 있으면 경이로운 느낌마저 든다. 나는 낮보단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낮에도 가장 감성적일 수 있음을 깨닫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선 덱에 잘 올라오지 않아 다이빙이 끝나고 나면 항상 선 덱에 누워 그리움을 곱씹곤 했다.
이때 지은 짤막한 시를 보고 있자면 내가 느꼈던 그 그리움과 기억이 어땠는지 다시 느끼곤 한다.
뜨거운 태양 속
익어버린 황량한 초목 사이
온통 물이 가득한 사막에서
너를 기억한다.
내 마음 녹아내리듯 너를 그린다.
가장 좋았던 기억이라 함은 단연코 코모도의 노을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같이 바라보는 코모도의 노을은 어릴적의 꽤나 깊은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본게 언제적이던가. 수평선은 온통 붉게 물들어 바다와 하늘을 첨예하게 나눈다. 산등성이엔 땅거미가 내리며 어둠으로 물들어간다. 누구보다 강렬한 마지막 빛을 쏟아내며 해의 시간은 지고 달의 시간이 온다.
코모도 국립공원의 바다는 정말로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바다이기도 하고 다양한 어종들과 아름다운 산호 밭, 풍부한 어머니의 공간이다. 바다는 흔히들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마지막 미지의 세계라고 부른다. 우리는 아직 바다 가장 깊은 곳까지 가본 적이 없으며 그 밑에 어떤 것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정말 깊은 물로 내려가면 어떤 기분일까.
코모도에서의 나이트다이빙(야간다이빙) 은 조금 어두운 저녁에, 혹은 해질무렵에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야간 다이빙을 해 본 경험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많은 기대감을 주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내가 기대한 어두운 바다는 깊은 어둠 속 고요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말 깊은 심연 속에 내가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이 되어 우주를 표류하는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우주가 아닌 바다이지만.
다 같이 딩기를 타고 나가 준비를 하고 입수를 했다. 입수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랜턴으로 인해 뿌옇게 보이는 시야. 보통 랜턴으로 비추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시야는 보이는데, 이 날따라 시야가 별로였나 보다. 반투명하게 만들어놓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빛처럼, 뿌옇고 어릿하게 랜턴들로 정신이 없다. 하강 소리에 귀를 바짝 긴장시키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턱 밑까지 차올라 있던 물이 입술로, 뺨으로, 눈으로 잠겨 곧 온몸이 물에 잠겨 들어간다. 바닷속은 뿌얀 시야로 인해 어두운 바다가 더욱 어둡다. 랜턴으로 비쳐보아도 수많은 부유물 때문에 뿌옇게만 보인다.
'하나, 둘, 셋...' 뿌옇게 보이는 랜턴 불의 숫자를 세며 우리 일행이 전부 다 있는지 확인해본다. 야간 다이빙에서는 사람의 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랜턴의 숫자로 사람을 센다. 앞서 가는 마스터 가이드의 불 빛이 멀어지고, 그 뒤를 옹기종기 모여 따라가며 이 곳 저곳을 랜턴으로 비춰본다.
밤의 바다는 낮과 다른 모습이다. 밤의 바다는 야생의 기운이 감돈다. 숨어있던 것 들은 달이 뜨면 바깥으로 나와 많은 일을 도모한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문득 랜턴 앞만 보고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어둠만이 보인다.
고요, 적막, 깊은 어둠. 이런 단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밤의 바다다. 랜턴을 끄고 그저 깊은 어둠과 고요함에 내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아쉬운 대로 슬그머니 랜턴 불 빛을 살짝 가린 채 어둠 속에 눈을 뜨고 심연을 바라본다. 마치 광활한 우주에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다. 위아래도 구분되지 않아 내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조차 모를 공간. 들리는 소리라고는 내가 숨 쉬는 공기방울 소리뿐이다. 숨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타닥타닥하는 바다의 플랑크톤의 소리가 들리다 이내 사라진다. 극한의 고독이다.
다이빙을 끝내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 기분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들이다. 나는 이 곳에 숨 쉬고 있고, 내가 살아왔던 세계로 돌아온 그 느낌들이 묘하다. 하늘은 별이 빼곡하다. 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다 같이 랜턴을 끄고 잠시 바다에 누워 별을 바라본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별이 많다. 물에 잠겨 별을 보는 일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행복해 마지않는 순간이다. 귓가에 스치는 물과 잠긴 느낌, 얼굴에 스치는 바람, 콧구멍 하나하나 눈가 하나하나 모두 감각이 예민하다. 때 묻지 않은 곳에 올 수록 별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내 마음속에 담는 별도 많아진다.
문득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모아나'가 떠오른다. 모아나가 온통 새까만 바다에 홀로 남아 본인을 찾아갈 때, 수많은 별은 쏟아지고 바다는 고요하게 그녀를 품는다. 어디서부터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늘인지 분간이 가지 않게 까만 거울 같은 바다에 박힌 별들은, 그 누가 봐도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 아니던가.
육지를 밟아본 기억이 몇 안되던 코모도 리브어보드 속에서 가장 좋았던 건 밤마다 펼쳐지는 선 덱에서의 파티였다.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며 진행했던 레크리에이션들이 끝나면 나머지 더 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선 덱에 모여 춤을 추고 밤을 지새웠다. 하나둘씩 방으로 돌아가고 나면 다시 코모도의 밤이 찾아온다.
그렇게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매일 밤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놀았던 기억이 없다. 코모도의 밤도, 낮도 모든 것은 대비(對比)였다. 시끌벅적할 정도로 흥청망청 하다가도 어느새 검은 어둠과 배가 움직이며 바다를 가르는 소리만이 들려올 때도 있었고, 항상 보는 바다와 지대는 대조되지만 조화를 이루며 그곳에 머무른다.
모든 다이빙이 끝나고 섬 트래킹까지 한 후, 마지막으로 우리는 딩기를 타고 모든 돛을 다 편채 항해하는 우리의 배를 바라봤다. 유쾌한 크루들과 황홀한 배, 마지막 날의 파티는 성대했다. 모든 크루들과 다이버들이 모여 춤을 추고 파티를 벌였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아직도 그때의 추억들이 배시시 미소 짓게 만든다. 다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의 장기를 뽐내기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 빛으로 대화한다.
파티가 모두 끝나고 배는 어느새 마지막 일정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불 빛들이 보이는 밤이다. 저 섬은 무엇인가 싶어 물으니 어느새 다시 라부안바조로 돌아온 것이라 한다. 우리는 내일 항에 내릴 수 있게 허가가 되어 있기에 오늘은 이 곳에서 머문다고. 그제야 정말 길었던 듯한 일정이 짧게 느껴지며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긴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파티의 여운이 남아 어지럽게 난장판이 되어있는 선 덱에 앉아 잠시 라부안바조의 깜박이는 불 들을 바라본다.
내가 잠시나마 함께했던 이 세상의 마지막 불 빛들을 보면서,
언젠가 이 곳에 다시 올 때면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마지막으로 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 코모도 리브어보드는 벌써 햇수로 2년이 다 되어가는 여행기입니다.
여행기를 쓸 때는 여행을 다녀와 바로 작성하거나- 느낌이 올 때 적어야 그 현장감과 생생함이 가득한데, 어느 정도 묵혀놓았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쓰려니 정말 강렬하게 느꼈던 단편적인 기억들만이 떠올라 중간 부분이 생략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아무쪼록 제 작은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억이길, 혹은 비슷하게 묻어둔 기억들을 꺼내어 볼 수 있는 일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