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에게_ 슬픔을 전시하는 사람들

by 세련

뇌는 습관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내가 슬프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게 익숙하기 때문에 반복한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우울은 무엇이었을까.

가끔 이유없는 짜증과 우울감이 몰려올 때면 나는 가만히 공책을 피고 하나둘씩 내가 힘든 이유에 대해 적어내려간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인간관계들에서 부터

내 미래, 일, 실수들, 고민, 생각까지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적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열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마음 속 찌르르하게 생각만해도 아프고 터져나오려는, 목이 메이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순간이 있다. 그 사유가 대체적으로 우울의 원인이다.


나를 알고 나를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정확히 어떤 것으로 인해 그 기분을 느끼고 힘든지에 대해 인지를 할 필요가 있다. 인지를 하는 순간부터 그 우울감을 없애기 위한 생각을 한다.

그 것은 내가 해결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해결을 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해결을 할 수 있다면 해결을 하기위해 내가 나아가면 되는 것이고-

해결을 할 수 없다면 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그저 흘러 지나가도록, 조금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마음을 내려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약이고 지나가면 다 괜찮아진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충고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때 중요한 건 내 감정을 깊게 보되, 그 감정의 넓이를 넓히지는 말아야 한다.


감정의 넓이를 넓히게 된다면,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경우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들이 뒤따라 온다.

단순한 슬픔으로서 시작했다면, 그 슬픔의 넓이가 넓어져 우울에서 분노, 자괴감, 증오까지 점차 나를 더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감정의 깊이는 조금 다르다. 내가 우울하다면, 그 우울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감정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본다. 내가 왜 그런 우울을 반복하는지, 혹은 그 우울감에서 깊은 감정의 심연속의 나를 꺼내어 본다.



감정을 깊게 들여다 보는 순간, 아마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로서 만들어진 심연 속의 나, 원초적으로 타고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내가 그 곳에 있다.

"스스로를 아껴주세요, 보듬어주세요." 이런 말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본인이 잘 알테니까.


슬픔을 전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그저 속으로 삭이는 것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내 슬픔을 공유함으로서 훌훌 털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이 우울로 인해 내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면-

때로는 나의 슬픔을 전시하자. 그렇게 내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전시하고나면 그 전시품 중에 하나쯤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있곤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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