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만난 일상 에세이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전국, 아니 전 세계가 심상찮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사회는 만남의 장 보다는 sns를 통하거나 메신저 따위로 안부를 묻는 둥,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만나고 싶을 때는 단체 음성통화를 하자고 얘기한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 내 직업의 특성상 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 퇴근을 하고 있다. 소규모의 회사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외출 또한 그렇게 크진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회사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 마치 가족과 같이 지내는 정도의 수준이다.
다만 시장으로 외근을 나가야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최대한 피하고 거절하는 편이다. 가급적 나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고...
시장의 분위기는 예전만 치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활기는 띄고 있다. 이 시장이 이럴 정도이니 나머지 더욱 작은 영세업체는 죽어나리라. 나 또한 그 죽어나는 영세업 체중 하나일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어쨌든, 근래는 사무실에 출근할 때 가급적 자차를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을 꺼리게 된 것도 있지만 작년에 차를 구매하게 되면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는 것도 인지하게 된 터였다.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를 타고 이동하나 전철을 타고 이동하나 비슷하기 때문에 이따금 미리 내비게이션을 켜보고 걸리는 시간이 짧은 쪽을 택하거나 몸의 피로도에 따라 차를 타고 가고 있다.
원래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해 매우 익숙한 나는 대학 4년과 회사 n 년을 포함해 수년간의 전철로 이골이 나있는 상태였다. 우리 집이 워낙 전철 역세권인 탓도 있지만 이래저래 전철역에 가까운 곳을 골라 다닌 것도 맞다. 내 학창 시절의 동선은 항상 전철역이 근처인 곳이 많았다. 불확실하게 잘 모르는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익숙한 역들이 있고 환승도 편한 전철들이 좋았다. (그 당시는 버스 환승이 없었다.)
버스 환승이 생긴 지금은 조금 덜 부담스럽긴 하지만, 잘 모르는 버스를 타고 어디인지 모를 수많은 역들을 보며 다니는 것이 나에겐 지금도 적잖이 스트레스다. 게다가 배차시간이 긴 버스를 만난다면 마냥 기다리는 그 기다림까지도 싫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사당역에서 회현역(남대문)까지 가던 건 나에게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사당역에서 출발해 전철을 타고 주욱 올라가다 보면 동작역에 도착한다. 이수역을 지나 동작역으로 가는 길에는 전철이 외부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나는 신발을 벗고 등을 대고 앉아있던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매일 건물이 즐비한 곳에서만 있다가 나들이 갈 때 보던 한강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나 어두컴컴한 지하만 달리던 지루한 시간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들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학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대부분 졸다가 문득 깨고 나면 동작역을 지나고 있을 때가 있다. 동작역으로 갈 때 내려다 보이는 곳- 작은 강변에 핀 벚꽃이 흐드러지게 아름답다. 동작역을 지나고 나면 외부 골격이 드러난 전철 특유의 구조물과 함께 한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한강 옆길엔 차들이 항상 가득하고, 거대한 네모 모양의 광고판엔 그때마다 광고가 바뀌어있다.
집에 돌아가다 충동적으로 같이 가던 대학 동기와 함께 무작정 동작 역에 내려 한강으로 향했던 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강에 도착했는데, 둘 다 멋을 부린다고 한가득 구두를 신고 예쁜 가방을 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겠다고 2인용 자전거를 빌렸다. 구두를 벗어 앞 바구니에 대충 넣고 맨발로 페달을 밟으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한강의 바람을 쐬었다. 강바람 때문에 추워져 콧물을 가득 머금고 가디건을 휘날리며 한강을 만끽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젊은 아가씨들이 맨발로 자전거 타고 괜찮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어린 치기에 뭘 하든 즐겁고 우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다시 전철을 타고 출, 퇴근을 하게 된 나는 아직도 동작역을 지난다. 보이는 풍경은 사뭇 달라진 부분들이 보인다. 가장 큰 것이라면 아마 롯데타워가 아닐까. 서울의 동편은 수많은 미래도시의 느낌이다. 반면 건너편에 보이는 63 빌딩은 여전한 느낌이다. 마치 이 전철을 경계로 과거의 내가 알고 있던 곳과 미래의 내가 알아 갈 곳을 나누어 놓은 느낌이다.
아직도 초보운전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에겐 서울 운전이 버거울 때가 종종 있다. 그날도 강변북로를 타고 가던 중 왼쪽 오른쪽 끼어들 일이 많을 때마다 뒤에서 오는 차들의 빵빵거림에 나도 모르게 주눅 들어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러다 문득 내비게이션이 얘기하는 다리를 건너라는 얘기를 듣고 다리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때 나는 동작대교를 내가 달리는 차 안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익숙한 철길, 그리고 예전엔 없었지만 지금은 생긴 동작대교의 카페들, 매일 바라보던 63 빌딩과 서울의 풍경들이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이 곳을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실려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이 곳에서 달리고 있다.어릴 적 보던 수많은 차들과 전철을 타면 경쟁하듯 달려가던 차들 중 하나가 내가 되어있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이 곳을 달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에 너무나도 갑자기 커버린 느낌이 가득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린 느낌이었는데, 동작대교를 건너다보니 내가 확 커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어릿하다. 시원하게 뻥 뚫린 대교를 속도를 내어 달린다. 문득 옆을 보면 전철이 오가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저마다의 길을 간다.
아마 이 순간도 이제 나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 라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동작대교를 건너며 언뜻 보이는 한강의 풍경이, 서울의 밤이,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하는 곳이 있기에 때로는 이 곳에 서서 그냥 존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 동작대교에 차를 대고 멈추어 서서 한강을 바라보며 숨을 쉰다.
아, 어른이 된 느낌은 이런 느낌이구나. 힘든 가장도 아닌데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느낌에 가슴이 벅차다가도 금세 현세의 생각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또 어느 세월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