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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an 23. 2024

내가 대신 죽여줄게요

20문장

남자는 여자의 증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 안의 분노덩어리를 압착하여 나오는 진액처럼 그녀의 눈물은 짙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저 멀리 걸어가는 다른 한 남자, 7층쯤 되는 건물의 창가에서 남자는 그에게 꽂힌 그녀의 시선을 옆에서 바라본다. 순간 총을 집어드는 그녀의 동작을 보며 남자는 생각했다. 내가 대신 죽여주자, 그래야 할 것 같다, 재빨리 그녀의 총을 빼앗아 들어 호흡을 멈추고 조준기에 과녁을 정렬했다.


탕!


발포와 동시에 그가 사망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녀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망한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신속하게 총알의 근원지를 추적했다. 그중 한 사람이 손가락을 들어 창가의 여자와 남자를 가리켰다.


저기다!


이 공간에서 벗어날 곳은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층계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남자는 연사가 가능한 다른 총을 들고 여자의 손을 잡아 이끌어 문옆에 잠복했다.


두두두두두


층계를 올라오는 수많은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무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옆에 잠복한 그들의 존재를 안다는 듯 마지막 계단 한 층계 두고 대치했고 투항을 요구했다.


남자는 아까 방아쇠를 당기는 결정에 자신의 이성이 개입하지 않은 경험이 진실이었는지 잠시 고민하였고 문득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총을 맞고 죽으면 뜨거운 고통이 뒤따른 뒤 완전한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순간, 들고 있던 소총을 장전하고 엄폐를 해제한 채 눈앞의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였다.


많은 이들이 쓰러졌고 언젠지 모르게 그 역시도 신체 어딘가에 총알이 박혀, 흥건한 피와 함께 바닥에 누워 짙은 갈색 목조 건물 계단 층계 공간의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했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중절모를 쓴 늙수그레한 복장의, 하지만 분명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신사가 다가와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나의 죽음에 대한 몇 마디 안부인지 인사말인지를 지껄인 후 당신이 죽인 사람들, 당신의 죽음 덕에 이 시대의 총기와 주머니속 편지들이 발견되어 역사 고증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남자의 혀끝에서 언어로 형성되지 못하고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이상 지난밤 내 꿈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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