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스며든다는 것

너라도 행복하렴..

by 전야감

이상하게도 그녀를 두고서는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서로 호감을 확인한 사이, 어느 정도의 생활을 상호 제약하고 주기적인 만남을 계약하는 사이, 그리고 애정 어린 언어를 주고받는 사이. 그게 바로 연인 관계일 것이다. 여기에 법적인 구속을 가하면 그것이 결혼이 되고 그 관계에는 추가적인 의무와 책임들이 뒤따르게 된다. 그녀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부부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여보, 자기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너' 혹은 '이름'으로 불렀다.


며칠 뒤 4번째 만남에 또 눈이 내렸다. 분명 전날까지 잠잠했는데 다시 한번 하늘이 하얗게 번졌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먹으러 갔다.(그러고 보니 또 내가 메뉴를 정했는데 대체적으로 나는 여러 모임에서 메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인도식 카레집이었는데 양이 많아 배가 과하게 든든해졌다. 소화도 시킬 겸, 빵댕이도 흔들어볼 겸, 우리는 코인노래방으로 향했다.


90년대 노래를 위주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2부의 중심 이야기가 될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날도 그렇게 마무리.

(나는 5살 연상 그녀와 결혼했다는 1부입니다. 2부도 기대해 주세요!)


우린 이미 연인에 가까운 행적을 보이고 있었지만 오피셜한 발표는 없던 상태였다. 그 주 주말, 그녀는 친한 회사 동료와 남해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껏 풀어놓았다고 한다. 썸 타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사실 나는 우리 관계는 썸은 한참 넘어간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다시 돌아온 날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휴식하며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우리 사귀자"


연인 관계에서 서로 통하는 마음이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언어로써의 확인도 분명 중요하다. 그 명시적인 언어를 기반으로 우리는 해당 관계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이는 충분히 친밀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짚고 싶었다.


그녀는 쾌활하게 승낙하였고 우리 관계는 효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꺼낸 날이 아닌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비행운을 이야기한 날, 돈까스를 먹은 날, 즉 1월 5일을 1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함께하기로 한 사이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서로의 결혼반지 안쪽에 그 날짜가 각인되어 있다.


각자의 영어 이름과 함께


관계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으니 우리의 생활도 점차 밀착되어갔다. 그 시기의 특이점은 나는 방학, 그녀는 방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방학일수가 없다. 게다가 그녀는 얼마 전에 실장직을 맡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속에 출근 때마다 막대한 무기력을 느끼던 시기였다. 그에 반해 직장을 다니는 기간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나는, 심지어 방학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시기와 위안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고생하며 일하는데 이렇게 편하게 쉬고 있다니..'

'아니다, 한 명이라도 편해야지.. 너라도 행복하렴..'


같은 양가적인 감정이었던 것.


그녀가 퇴근하면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밤을 보내고, 그리고 집에 가지 않았다. 집에 갈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그녀도 그 점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출근한 시간에 누군가가 자기 집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하릴없이 근처를 배회하며 게으른 오후를 즐기기도 하고, 그녀 집에 쓰지 않는 물건을 당근 마켓에 팔기도 하였다.


그녀는 퇴근이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하루 있었던 일을 마음껏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우리의 직업은 달랐지만 서로 극단에 있는 다름이 아니었기에 이해와 눈치를 가지고 차츰 서로에게 스며들어 갔다.


이런것들을 팔아 맛있는거 사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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