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같이 일요일 아침을 맞았다. 일어난 뒤 어색함은 없었다. 그녀는 일요일에도 일정이 있었다. 주말에는 자기계발모임을 위해 서울로 간다. 오래전부터 기수 별로 운영되는 꽤나 본격적인 모임이었고 여러 가지 주제를 정해 전문적인 모임을 진행한다.
그녀를 제외한 모임의 모든 멤버들은 서울에 거주한다. 그래서 거리상, 시간상에 제약이 가장 있는 그녀지만 몇 년째 서울을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정 붙일 일이 없어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점으로 같이 국밥 먹자. 그리고 나 터미널에 내려다 줘"
"그래 좋아"
우리는 지역의 유명한 국밥집에 들러 해장을 하였다. 맥주를 1캔 마신 나도, 4캔 마신 그녀도 해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식사를 끝마치고 그녀를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그녀가 내리기 직전에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었다.
"자, 생일선물이야"
비타민이었다. 비타민 B. 피로회복에 와따라고 했다.
(그녀는 생일 선물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사이가 더 이어질지도 불확실하였고, 이 정도 사이에 생일선물을 주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준다면 어느 정도의 선물이 적절할까라는 고민들. 어찌 됐든 비타민은 당시 우리 사이의 완벽한 스윗스팟에 있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워, 잘 먹을게"
오늘 내가 비타민을 먹었나 기억이 안나면 화장실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형광빛...ㅎ
그렇게 작은 쪽지와 함께 선물을 준 그녀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우리는 당연히 자주 볼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서울로 향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집으로 향하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울 가는 마누라 터미널 태워주기 패턴의 시초였다.
그렇게 나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특성화고에 근무하기에 이 방학은 진짜 방학이다. 그럼 가짜 방학은 무엇이냐 하면 보충수업으로 시작하는 방학이다.
이 보충수업은 학교의 풍토, 학생들 성향, 과목에 따라 개설 여부가 달라지는데 영어 과목은 수능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시점부터 점점 국영수 3대장의 위상에서 점점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일반계고에서조차 방과후수업이 개설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국수과라고 해야 할 만큼 과학 교과의 위상이 올라간 실정이다.
오히려 현재 인문계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금이 그 당시 근무했던 특성화고보다 보충수업을 덜하고 있다. 특성화고에서는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위해 이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학기 중 기초 영어를 방과후 수업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도, 잡아두는 것도 보충 수업 그 자체보다 곱절은 힘들었지만 말이다.
뭇여자에게 피로회복에 탁월한 선물을 받은 아들이 집에 돌아왔다. 엄마에게는 친구 집에서 잤다는 편리한 변명으로 지난 외박을 정당화했다. 지갑을 찾아보니 자주 쓰는 카드가 없었다. 마지막 카드를 쓴 곳을 기억해 보니 어젯밤 편의점에서였다.
[어제 편의점에서 맥주 사고 카드를 거기에 놓고 왔다 ㅋㅋ]
[헉 ㅋㅋ 그래도 기억을 했네ㅋ 찾아왔어?]
[그냥 전화해서 거기있는것만 확인했어 ㅋㅋ 글구 아까 비타민하나 먹었어]
[ㅋㅋ잘했어 ^^ 힘나는거 느껴지지? 카드 무슨카드야? 내가 받아다 놓을께]
[국민은행카드 하얀색이야 ㅋㅋ 고마워]
[ㅋㅋ나한테 카드 맡겨두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지 ㅋㅋ 쓰고싶으면 써도 돼]
[엇 정말? 백화점 한번 가야겠는데 ㅎㅎ]
이런 빌미가 없어도 만날 우리였지만 자연스럽게 또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따라왔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울엔 왜 이리 항상 사람이 많은지, 모임 장소의 분위기, 맛있는 음식들, 세상 모든 일을 척척해낼 것 같은 그 모임 멤버들도 항상 고민거리라는 연애 이야기들 등등. 나는 그곳에 없었지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도 왠지 서울을 자주 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