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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l 18. 2024

해산물이 싫어요

39문장

줏대 있되, 고집스러운 사람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정반대의 말이 그게 도대체 가능하냐 싶어도 충분히 가능하지요.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지만 제가 도무지 고집을 꺾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해산물입니다.


같은 교무실에 딱 한 명 저보다 심한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주변에 저만큼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날것에 더 민감한데,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던 회, 초밥류에 처음 흥미가 생긴 것은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본 후였습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너무도 맛있어 보이는 그림 묘사에 매료되어 어느날 장보러 간 엄마에게 초밥하나 사달라고 했죠. 그리고 먹어본 초밥 하나. 만화에서 보이던 살살 녹는 생선살, 춤을 추는 밥알은 언감생심, 그냥 제가 알던 역하고 맛없는 해산물일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제 마음을 다시 단단히 걸어 잠궜죠.


그리고 직장을 가진 후 어쩔 수 없이 해산물을 먹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기나긴 회식시간 내내 가만히 공염불만 외고 있을 수 없기에 몇 번씩 입에 대기도 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해산물을, 더 자세히 회를 입에 못 대는 수준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먼저 회를 먹으러 가자고는 절대로 제안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회가 있다면 몇 점 정도는 먹어가며 그 자리에 위화감을 만들지 않는 정도는 되었죠.


모든 해산물을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든든하게 믿을만한 메인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대게 육류요리가 되겠는데, 그렇다면 해산물을 어느 정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느끼한 육류요리에 어느 정도 카운터가 되기도 하며 믿을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보다 마음 편히 해산물에 손댈 수 있죠. 학교에서 제육볶음류가 나온 날 해물탕 국물이 나온다면 그건 환상의 궁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흘러 내가 해산물을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가만히 자문해 보면 대답은 절대 NO입니다. 여전히 내 코에 해산물의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고, 회 몇 점을 먹으며 장단을 맞출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해산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껏, 아마 앞으로도 절대 들지 않을 거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러한 기호를 주변에도 거리낌없이 설파하고 다니는 터, 친구들끼리는 물론이거니와 직장에서도 내가 낀 그룹에서는 거의 100%의 확률로 회식메뉴에서 해산물 제외됩니다.


또한 도무지 바뀌지 않은 해산물에 대한 나의 기호를 거꾸로 생각해 보아 과연 다른 사람들은 진짜 해산물을 좋아하는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맛이 없는 것이 맞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맛있는 거라고 하니까, 역사적으로 대대손손 그런 착각을 더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해산물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겹살과 회 중에 무엇을 더 선호하느냐?' '진짜 배가 고플 때 회가 머릿속에 떠오르느냐' 따위의 질문을 으레 하곤 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회는 초장맛으로 먹는 거지 뭐' 라며 나의 가설을 어느 정도지지하는 듯한 데이터를 제공해 주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실로 곧 죽어도 해산물이 먼저라며, 심지어 자신에게 평생 고통을 주는 시댁이 바닷가에 위치하여 해산물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까지 하는 분들을 보면 제 가설을 강력하게 피력할순 없는 것이죠.


요 몇 년 이런 해산물에 대한 저의 강력한 불호를 마치 초등학생처럼, 어떠한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란 듯이 지껄이고 다닌듯합니다. 육류 앞에 절대로 해산물을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경험의 다양함과 타인입장에서의 이해를 역설하고 다니는 내가 이런 생각과 일관적이지 못한 식품기호를 가진다면 과연 나의 삶의 철학이 얼마나 신뢰로운가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요, 예, 해산물을 절대 안 먹겠다, 그 말만은 살짝 철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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