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깔린 구름이 모든 것을 덮었다. 계절의 틈바구니가 메워져 그 이동이 잠시 더딘 듯했다. 의외로 답답한 마음보다 작은 포근함이 찾아왔다. 희뿌연 구름은 뜨겁던 모든 것을 식힌, 차디찬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그전에 잠시 시간을 멈춰 세상을 준비시키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작은 자비였다. 매서운 회초리를 때리기 전의 자비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을 자비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남자는 순식간에 짧아진 낮이 낯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전히 밝은 밖을 바라보며 또 다른 시간을 꾸밀 수 있었다. 그렇지만 눈앞의 어둠은 그런 마음을 닫아버렸다. 마지막 숟갈을 싹싹 긁어 입에 넣기 전 어두워진 창밖은 굉장히 비정해 보였다. 남자의 마음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지금이 도대체 몇 시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고서야 비가 온다는 것을 알았다. 밖에 나가야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부슬비였다. 짙은 어둠에 어울리는 서늘한 온도가 피부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겉옷을 챙겨 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남자는 곧 열기로 채워질 자신의 몸을 더 믿기로 했다. 문득 왼쪽 신발 끈이 풀려있었다. 가던 길 중간에 꿇어앉았다가 문득 등 뒤 허공에 인적이 없음이 느껴졌다.
십 수년 전 인파가 들끓는 지하상가 아래에서 신발끈이 풀린 적이 있다. 걸음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발이 헐거워져 어딘가 정착하여 끈을 묶어야 했다. 걷던 자리에서 주저앉아 얼른 일을 해치우려 했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행인들의 발길에 엉덩이를 스쳐 채이고 말았다. 그리고 보행을 방해받은 그들의 표정은 그를 경멸해 마지않았다. 다시 얼른 일어나 겨우 구석자리를 찾아 끈을 마저 묶고 일어나 보았던 그 풍경.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쉴 틈도 없이 어두운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때 그 숨막힘이 선명하다.
손에 잡았던 끈을 놓고 등 뒤를 바라보며 그 정적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온전히 내 공간이 된 이곳이다. 끈 묶기를 넘어 자리를 펴고 누워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넉넉함이었다. 그런 완전한 곳을 갖고 싶었다. 등 뒤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그것이 출발일 것 같았다. 어쩐지 갑작스러운 조급함이 찾아왔다.
이것은 공간이 주는 감상적 황홀함을 뒤덮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냥 주는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구상에, 이 대한민국에, 누군가 침범할 수 없는 내 자리하나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많은 고뇌와 선택이 필요하다. 가만히 서있다가는 서서히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열심히 물장구쳐서 수면에 떠있어야 최소한의 사람구실을 하며 살아간다.
발을 어떻게 구를 것인가. 그래 도대체 어떻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