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장
"너는 뭐가 제일 무서워?"
"무섭다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할 건데?"
"어떻게 정의하다니 무서운 게 무서운 거지."
"글쎄. 나에게는 너무 추상적이야. 그래도 어느 정도 경계가 필요해. 예를 들어줘봐."
"음.. 공포 같은 거지. 어릴 때 있잖아, 엄마랑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가서 잠깐 엄마가 안 보일 때 느낌 말이야. 갑자기 혼자된 것 같은 기분? 그런 감정을 무섭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방향을 잃었을 때의 느낌 말하는 거지? 의지할 곳이 없는 것 같은 느낌?"
"뭐 그런 기분인 거 같아. 갑자기 정의를 내리라니까 잘은 모르겠어. 길 가다가 갑자기 마구 짖는 큰 개를 만났을 때도 무서운 기분이었던 거 같은데. 그 느낌도 비슷한 건가? 아니 조금 다른 거 같아. 괜히 질문했나 봐."
"아니야, 네가 무슨 질문을 한건지 충분히 이해해. 다만 나도 살아가며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을 때 그때 나의 감정에 대해 분석해 봤거든. 그러면서 그 감정을 분류해 봤어. 그중에 분명 무섭다, 공포스럽다의 감정으로 분류하던 때가 있었단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짜증이나 불안함 같은 감정과 중첩되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이 있어. 그러다 보니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히 라벨 붙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단 말이지."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해? 생각해 보니 그러네. 불안함도 분명 어느 정도 무서움이 섞여있지만 또 완전히 무서운 감정과 비교해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하지만 그 중간과정의 감정도 확실히 존재하는 거 같고. 말로 우리의 마음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이네."
"맞아. 그래서 나는 가끔 언어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해. 매우 회의적이 되는 거지. 사람들이 살아가며 글자로 말로 생각을 주고받고, 이 인간이란 존재가 발전해 왔지만, 누군가에게 최초로 떠오른 그 무엇이라는 것이 이 말이나 글자를 거치며 얼마나 변형됐을까 싶어. 그렇고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의도되지 않은 우연의 산물일지도 몰라."
"그러게. 그러면 지금 너와 대화 역시도 서로 아무것도 이해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겠네? 나는 지금 내가 네 생각을 어렴풋이, 아니 그것보다 더 뚜렷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무서워. 어머, 무섭다고? 이런 감정도 무서움인 거야? 막막하다는 느낌도 있는데 나는 무섭다고 말해버렸어."
"무서움이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겠구나. 맞아 나도 분명히 그렇게 느껴져.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잖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인 건가. 착각의 의사소통이라니 정말 우리 인간은 황당할 정도로 바보인것 같아."
"아 복잡해, 몰라 모르겠어. 됐고 그래서 뭐가 무섭냐고 너는?"
"무서운 거? 나에게 무서운 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