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장모님과 아내 이모부의 공동 생일잔치를 위해 하동으로 내려갔습니다. 여러 가족 행사가 많은 와이프의 외가 인지라 이제는 너무 익숙한 하동, 그리고 처외조모댁입니다. 여느 때처럼 장모님과 처이모분들이 스무 명이 넘는 행사 참여자를 위해 상다리가 부러질만한 잔칫상을 차려주셨고 웃음소리가 오가는 저녁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올해 96세가 되신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몇 달 전부터 악화된 건강으로 누워계셨는데요, 생일잔치 중 몇 번 방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시던 처이모님께서 별안간
"옴마야, 엄마가 숨을 안 쉰다. 우짜면 좋노"
모두가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시간이 오고 말았습니다. 생일잔치는 순식간에 비상사태로 돌입하였지만 할머니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다급함보다 받아들일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연함이 온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비를 뚫고 온 구급대원들, 경찰들. 저는 그들이 들어올 길을 내어주느라 차를 빼야 해서 집안에서 있었던 대화는 제대로 듣지 못하였으나 어찌하든 결론은 의사를 만나 사망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별일 없이 돌아간 공무원들 뒤로 비를 흠뻑 맞고 들어온 덩치 좋은 병원 직원 두 분이 할머니를 봉고차에 모시고 읍내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들 일부를 태우고 운전을 하여 그 차 뒤를 따랐고 병원에서 잠시 들러 사망진단을 받았는지 곧이어 예약된 인근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한밤중 고요한 장례식장에 불이 켜지고 사자(死者)를 기릴 그곳에 생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에 수반된 각종 절차를 치르며 두어 시간이 시간이 흘렀고 저는 '손서(손녀의 남편)'라는 직함으로 이 장례식에 가장 멀리 관계된 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와 처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 본격적인 장례식을 위해 쉬기로 하였습니다.
-
다음날 아침, 비가 그쳤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시던 날 그렇게 울던 하늘은 찾아올 손님을 위한 예의를 갖추는 듯하였습니다. 본래 장모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들이 대부분 모여있던 터라 여러 준비가 순조로웠습니다. 장례업체 직원분께서 많은 관계자들의 상복 사이즈를 일일이 체크하신 후 그에 맞는 상복을 바로 준비해 오셨고 모두 검은 옷으로 환복 한 채 본격적인 장례식을 맞이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큰딸이신 저의 장모님과 같은 대(代)의 손님들이 많으셨습니다. 조문객분들이 60에서 70줄에 계신 분들이 많아 이 장례식이라는 일이 그분들께도 여러 복잡한 심정을 전달해 주는 듯하였습니다. 여기에 가장 먼 곳에서 연관된지라, 응당 슬픔은 느끼나 그 슬픔의 응축이 가장 성긴 사람으로, 저는 먼발치서 장례를 바라보았습니다. 장례식 관계자 중 가장 어린, 저를 너무나 좋아하는 7살 배기 처조카를 데리고 놀아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임무였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인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이 장례식장에 자그마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장례 이틀차가 지나 다음날 아침 발인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관을 옮기기 전 모든 가족이 모여 관 앞에서 제(祭)를 지냈습니다. 생전 고인께서 좋아하시던 '고장 난 벽시계'를 합창 아닌 합창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작은 이모님의 지인분께서 고인을 기리는 노래 한 소절을 부르셨는데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근 10년간 들었던 노래 중 가장 저의 가슴을 강하게 때리는 선율이었습니다. 섬진강.. 지장보살..이라는 단어들이 들렸고 이 고장에 살았던 사람이 편하게 이승을 떠나길 기원하는 노랫말이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때 여기저기 울음이 터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고향인 남해의 한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비가 오고 난 후로 너무나 깨끗했던 하늘과 조금은 차가운 공기, 4월의 푸르름을 머금은 남해의 수풀은 고인께서 편안히 떠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그곳을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도 너무나 포근히 보듬어주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았던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녹빛의 마늘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운 분(粉)이 되어 다시 돌아와, 사셨던 곳 근처 가족묘역 장지에 고인을 묻어드렸습니다. 저도 고인을 덮어드리는 흙 한 움큼을 보태었습니다. 작은 이모분이 아시는 스님께서 찾아와 염을 외시는 모습, 다시 한번 그곳에서 모두가 여러 번 큰절을 올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배(拜), 흥(興), 재배(再拜), 흥(興)"이라며 절을 올릴 때마다 들었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모두가 몸에 땀 한 방울 나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날씨였습니다.
-
그렇게 모든 장례가 끝났습니다. 조문객으로 잠시 장례식장을 찾아간 적은 여러 번이지만, 이렇게 장례의 시작부터 끝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다시 흠뻑 내리기 시작한 빗속을 운전하며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며칠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각본같은 이야기 같았다고요. 어떻게 큰딸의 생일에, 자손들의 생업에 큰 지장이 없는 주말에 모두가 모인 날 조용히 가셨는지요. 연출한 것 마냥 첫날에 그리 비가 오고, 필요할 땐 비가 그쳐가며, 아름다운 풍경까지 선물해 주시며 그렇게 가셨는지 말입니다.
편안히 가셨습니다. 생전에 베풀고 사신 복록으로 이렇게 가시는 길도 하늘이 축복해주셨나 봅니다.
문득 몇 년 전 장손녀 사위라고 찾아온 제가 자꾸 눈이 불편하여 눈물을 훔치자, 함박 웃으시며 챙겨주셨던 손수건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