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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편이 쓰는 난임일기

주사놔주는 남편

by 전야감

난임시술의 절차는 복잡하다. 그 복잡한 절차를 남편은 보통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가급적 난임시술 중 내가 보고들은 것을 추가적인 조사 없이 그대로 쓰려고 한다. 모든 절차를 상세히 적는 것보다 현재 내가 인지하고 이해한 것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일기처럼 옮기기 위해서다.


그 절차 중 남편이 적극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사 놔주기. 시술 전에는 주사를 맞는다는 말을 듣고 막연히 매회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사는 셀프였던 것. 그것도 배에다가 놓는다. 평생 배에는 직접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맞는 것이 아님에도 몸서리가 쳐졌다. 주사 자체도 무서운데 그걸 배에다가 놓는다니. 통계가 있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난임 주사는 아마 시술자 아내 본인들이 직접 놓을 것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주사를 놓는 장면도 보여주는 난임 브이로그도 있다.


와이프는 나에게 주사를 놓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생각해도 직접 본인이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시술에 동참하는 절차기도 하다. 주사도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슨 게임 보스들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주사의 종류에 따른 고통은 시술이 흘러감에 따라 높아져갔다. 아픈 주사일수록 배에 멍도 잘 드는 듯했다.


난자 채취 전에 맞는 주사는 2종류였다. 고날이라는 두꺼운 펜처럼 생긴 오전에 맞는 주사와 오후에 맞는 흔하게 생긴 주사. 고날은 세팅하는 방법도 편하고 바늘도 얇아 고통이 덜해 보였다. 하지만 냉장 보관을 해야 해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날에는 보냉백을 지참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했다. 반면 오후에 맞는 주사는 제조부터가 어려웠다. 주사용액을 주사기로 뽑아 가루가 있는 다른 용기에 옮긴다. 그리고 주사기를 바꿔 그 용액을 뽑은 후 놓는 식이었다. 이 주사도 바늘이 그렇게 두껍지는 않았지만 고날 주사보다는 아프다고 한다.


1049506_1109821_5931.png 고급 펜처럼 생긴 고날 주사. 사용할 떄 주사바늘만 바꿔끼면 된다.


주사를 잘 놓는 방법은 각도를 최대한 수직으로 놓는 것이다. 그래서 와이프를 침대에 눕게 하고 가장 안정된 자세로 주사를 놓았다. 이 과정에 약간의 의식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다. 음악은 최유리의 노래리스트이다. 결혼 즈음 최유리의 '둘이'라는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고 다른 노래도 찾아들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색과 분위기의 가수라고 생각했다. 와이프도 이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녀의 콘서트도 다녀온 적이 있다.


와이프가 눕는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재생한다. 최유리 리스트를 랜덤으로 돌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최유리의 '숲'이 고정 bgm이 되었다. 천천히 주사기를 세팅한다. 주사기 용액 추출 후 공기를 완전히 빼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 과정이 익숙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다. 공기를 잘 빼지 않으면 배에 멍이 생기기 쉽다고 하였다. 그리고 알코올솜으로 닦은 와이프의 배위로 주사기를 찔러 넣는다. 그리고 천천히 용액을 주입한다. 나는 항상 비슷하게 한다고 하지만 와이프는 어떤 날은 덜 아프고 어떤 날은 더 아프다고 하였다. 항상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주사는 하루는 배 왼쪽 하루는 오른쪽에 놓곤 하였는데 전날의 흔적이 보일때는 마음이 아팠다. 오후 주사는 잠잘때쯤이었다. 그렇게 주사를 놓고 주사를 제조하게 위해 까놓은 한무더기의 기구들과 포장지들을 치우고 같이 누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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