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2021년에 인연을 맺는 제자가 있다. 그 해 고1이던 그 학생 학년을 가르치고 나는 22년부터는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러모로 끔찍한 그 학교에 3년이나 있으면서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탈출했다고 지금도 안심하고 기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난 여전히 그곳에 묘한 애정과 집착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진리는 진흙밭에서 피어나는 진주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그런 학생 한 명을 보았다. 1년 내내 어떤 수업 시간이든 다른 친구와 짝을 이뤄 난장판을 피우는 그 학생은 교사들에게 그리 평판이 좋지는 못하였다. 수업 때 태도가 엉망이어서 인간적으로 미운 학생이 있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학생이 있다. 그가 그랬다.
사실상 그 학교에서는 수업 진행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한 시간 들어가 아이들과 별 탈 없이 마무리하고 나오면 다행인 것이다. 학생에게 맞을뻔한 적도 몇 번 있던 기억을 되돌려보면, 나는 오늘 이 학교에 근무하며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다치지 않는다가 근무 목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난장판을 헤집고 그 학생은 교탁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그리고 어설픈 말투와 지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그 녀석. 나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입을 닫는 반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상대방과의 1대1 대화를 극선호한다. 학교에서 나라는 인간의 진정한 교육은 학생과의 바로 그러한 순간에 빛을 발한다고 믿기도 하면서.
어쨌든, 어설펐지만 그 녀석은 그렇게 이어지는 나와의 대화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언뜻언뜻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수업, 복도, 방과 후를 가리지 않고 1년간 진행되었고 교내 누구 못지않은 브로맨십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교무실에 그 녀석을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당부를 전하며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조금의 눈물이 고였다. 내가 떠난 이 엉망인 곳에 남겨질 그 아이에 대한 연민과 그저 이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에게 투영된 나의 어릴 적 모습 약간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겨울 방학식 날 아이들을 보내고 홀로 남겨진 교실에 찾아와 그 아이 역시도 그렁그렁 한 눈물로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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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한 명은 1년에 몇 백 명의 교과 학생, 몇십 명의 담임 학생을 만나 별의별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나름의 교육을 행한다. 학생의 엇나간 행동에 대해 가정교육의 문제, 교우관계의 문제 등의 흔하디흔한 패턴을 들어 혀를 차기도 하며. 사실상 그 교육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진정 학생을 올바르게 성장시키고 이 나라에 이바지하기 위함일까. 어쩌면 교육이란 미명하에 말 잘 듣는 학생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적당히 만들어 교사로서 자존감을 다치지 않고 올 한 해 적당히 버텨나가는 것 아닐까.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이제 이 말은 첨예한 뒷받침 근거를 들어주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 명제가 되어벼렸다. 그저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 교사가 해야 할 일을 너무도 편리하게 압축해서 던져버리는 말. 이제 그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상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 존재의 이유를 파헤치고 논하며 학생과 교사는 깊이, 진실로 깊이 교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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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약 10년 차 교사로서 내가 할 가장 큰 교육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다수의 학생을 얇고 건조하게 대하는 대신, 진짜 의미 있는 교육은 그 학생 한 명에게, 혹은 매년 나와 주파수가 맞는 몇 명의 학생들에게 쏟아붓기로 했다.
그 후 우리의 멘토링은 시작되었다. 주기는 고정적이지는 않지만 대략 3~4개월 정도에 한 번씩. 항상 학생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내 돈으로 식사와 커피를 계산했다. 자신도 돈을 내려는 학생에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금은 그저 충실히 받는 것에만 몰두해라. 남교사가 여학생을 이렇게 멘토링 했다면 진정성을 떠나 그 그림이 괴이했겠지만 우리는 남자 대 남자. 나는 그가 멋진 남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면의 아픔을 잊지 않는 그런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존재를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남자로.
근황을 이야기하고 갈등을 이야기했다. 어설픈 말투였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생각할 줄 알았다. 기본적으로 여린 마음을 가진 존재였다. 그 여린 마음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를 덮어줄 세련된 덮개가 필요하다. 그가 말하면 나는 평하고 그는 받아들였다. 아무리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더라도 그 나이에, 그 과정에 꼭 겪어야 할 것들이 있기에 재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드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책과 글쓰기를 권했다. 나와의 관계를 귀찮게 느낄 정도로 자주 이야기하였다. 책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채근에 꼭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의 만남의 그렇게 반복되었고 지난겨울, 여전히 행동보다는 내면에 머물러있는 그에게 조금 더 강한 충격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만남에도 이런 하소연식의 징징거림만 있다면 나는 너를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성장의 증거를 보여줬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의 2022년 마지막 만남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해가 지나 진행된 2023년 첫 번째 만남. 그는 2가지의 큼직한 사례를 통해 괄목할 인간관계 기술과 심리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이 이 정도 차이를 가져다주는가 놀랍기도 하였고 나의 인풋에 대한 명확한 피드백 덕분에 흡족하기도 하였다. 다들 느끼시겠지만 인풋에 대해 피드백을 명확히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상향적 성장을 보여주었기에 이제 그의 머리에 제대로 된 운영체제가 탑재되었구나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그를 일방적으로 멘토링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사안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며칠 전 만남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학생의 잠재성은 나만 알아본 것이 아니다. 그 주위 사람들이 종종 그에게 너는 크게 될 것이라는 말을 종종 전한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은 그의 사촌 형. 20대 중반이며 명문대 자퇴 후 서울에 거주하며 외국인과 연애를 즐겨 하고 사업과 음악을 오고 간다는 mz식 자기계발인이었다. 넘치는 자신감과 인사이트로 나 못지않게 그 학생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건만, 그도 아무래도 20대인 이상 아직 30대가 넘어야 갖출 수 있는 여유와 철학은 부족했다. 이 학생은 그 틈을 포착하는 안목이 생겼고 프레임 조절과 적절한 언변으로 오히려 그 사촌 형과의 역학관계를 역전하는 사례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내에서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오히려 그들보다 성숙한 처신의 사례도 보여주었다. 그 나이에 이미 어지간한 20대들도 갖지 못한 통찰을 갖춘 것이다.
더불어 내가 항상 그에게 강조했던 것.
말을 똑바로 해라.
발음을 똑바로 해야 한다.
문장을 항상 끝까지 정확히 맺어야 한다.
말의 호흡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고 스토리를 구조적으로 짤 수 있어야 한다는 등.
아직 그의 내적인 성장만큼 물리적 언변이 따라오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성장을 목도했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이제 약 5개월도 남지 않은 그이다. 이 정도면 성인으로서의 예비는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잘 만들어진 운영체제로 그는 세상 속에서 마음껏 자신을 펼쳐 나갈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남자의 성장을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내 나이 또래에서도 만족할 만한 교류를 찾지 못하는 작금에, 요 몇 주 집중적으로 연락 온 몇몇 제자들이 자신만의 색을 뿜어가며 누구 못지않은 성숙을 보여주는 모습에 기쁨과 자극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인간은 결국 정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