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후 8월 어느 날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 한분이 다가오셔서 하시는 말씀.
"샘, 이번에 전국노래자랑나가요?"
"예? 전국노래자랑요?"
"이번에 계룡편 한다던데요? 샘 나가봐요"
"나갈게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했다. 예심날짜 9월 3일, 녹화날짜 9월 5일. 9월 6일은 3학년 모의고사날, 대외고사가 나의 업무이기에 하루 전날 녹화일인 것이 너무 다행이다. 물론 그 당시 예심을 통과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통과한 샘 쳤다.
예심 신청은 전화나 이메일로 받았다. 신청서를 보니 곡은 3개를 적는다. 내가 자신 있는 것.. 역시 작년부터 겁나게 불러재껴 온 영탁형님 노래들. 그중에서 무대에서 불러보고 싶은 노래,
바로 한량가.
히든싱어 때 연습한 노래는 아니지만 곡분위기와 컨셉이 너무 좋아 이미 애창곡이 돼버린 노래다.
전국노래자랑을 나가기 위해서는 컨셉이 특출 나던가, 인간 캐릭터 자체가 좋던가, 노래 잘하던가인데 이 중 오히려 노래만 잘해서는 별 경쟁력이 없다. 저 3가지가 적절히 조화되어야 전파를 탈 수 있다. 한량가라는 노래는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나온 지 그리 오래된 노래도 아니고 대중들이 그리 익숙한 노래는 아니다. 하지만 노래 자체 컨셉과 멜로디가 확실하기에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착 감긴다. 그리고 나의 혈관에는 1년 넘게 영탁의 피가 흐르고 있고 또 한 번 써먹을 고3 담임이라는 컨셉, 이 정도면 예심은 통과할 경쟁력이 된다고 판단했다.
와이프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예심장을 찾았다. 대기명단을 보니 대략 250팀 정도였고 현장 접수까지 있었다. 예심은 가나다 순으로 진행되며 나의 번호는 127번, 적절하다.
무반주로 한 명당 1절, 대략 1분 정도씩 소요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학생 2팀, 나 포함 교사 3팀이 출전했다. 하나하나 순서가 지나 드디어 나의 차례.
수없이 많이 불렀던 노래였지만, 그리고 크게 긴장되지 않은 예심무대지만, 올라가서 부르니 나도 모르게 키를 올려서 시작하고 말았다. 부르면서 아차 싶었지만 그대로 불렀고 다행히 1차 예심 합격. 2차 예심 대상자 59명 중 31번이었다. 이번 순서도 적절하다.
2차 예심은 반주와 함께 부르게 된다. 심사를 보고 계신 작가님은 이번에 나에게는 한량가 외에 써낸 니가왜거기서나와까지 2곡을 시키셨다. 니가왜거기서나와를 할때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때 합격일까 싶었다.
저녁 8시 반이 되어서야 2차 예심이 끝났고 30분이 넘는 회의가 끝나고 합격자 발표가 이어졌다. 계룡은 군인도시다 보니 군인 참가자들도 많았고 그들을 위한 티오가 4자리였다. 군인들 합격자 발표, 다음은 가족 티오. 전국노래자랑은 KBS프로그램이다 보니 가족적이고 따뜻한 컨셉을 가장 환영한다. 전국노래자랑을 나가려는 분들이 계시면 가족 중 특별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과 짝을 이뤄 컨셉에 맞는 선곡을 하면 합격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외 회사동료, 학교 부문 발표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가 방송에 올릴 정도의 설득력은 있었구나. 너무 기뻤다. 하지만 방송의 전반적인 줄기에 쓸 캐릭터는 아니었는지 인터뷰나 어떤 설정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 뭐 어때, 무려 공영방송에 나와서 한량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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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 당일. 일단 학교에 출근하여 조회를 마치고 10시 반까지 녹화장소로 갔다. 학교에서 차로 5분이면 되는 거리라 간편했다. 나 포함 16명의 참가팀이 무대옆 대기장소에 모여 리허설을 위해 대기했다. 노래방 반주에 익숙하다면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낯설 수 있다. 그리고 등장, 퇴장, 자기소개도 전국노래자랑의 문법에 맞게 진행해야 했고 이것만 따로 리허설하기도 했다.
식사시간이 있었고 2시부터 본무대 녹화가 있었다. 무척 더운 날씨였고 출연자들도 출연자들이지만 관객들이 직사광선 속에 특히 고생이 많아 보였다. 날 응원하러 온 와이프, 어머니, 어머니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나는 2번째 순서여서 금방 순서가 됐고 무대를 마쳤다. 모두의 순서가 끝나고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방송에 혼자 노래하는 장면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쁨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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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달이 지나 며칠 전 드디어 방송이 나왔다. 보통 전국노래자랑은 무대 뒤편에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쓰여있는 배경이 있는데 이번 계룡 편은 뒷배경이 예뻐서 그랬는지 숲이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뭔가 다른 프로그램 같은 분위기가 났다. 작년 히든싱어 무대를 봤던 것처럼 가족들과 모여 무대를 보았다. 현장에서보다 방송에서는 음향이 더 날것으로 덜 보정된 형태로 나온다. 현장 마이크가 더 빵빵하고 보정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방송을 보면 목소리가 다 뽀록나는것 같은 민망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즐거웠다. 또 내가 아닌듯한 내가 티비에서 움직이는 모습, 묘한 기분이다.
나는 그냥 이런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