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글은 솔직해야 한다. 많은 지침에서 보았고 본능적으로 그리 느낀다. 때론 글은 가식적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 가식적인 글은 진솔한 글을 완전히 구사한 이후에 기술적으로 부리는 영역이다. 나는 브런치와 익명 블로그에서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에서는 꽤나 검열된 이야기를, 블로그에서는 보다 날것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10% 정도의 진짜 이야기는 여전히 쓰지 못한다. 그 글들은 일부는 내 머릿속에서, 일부는 임시저장 목록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다.
며칠 전 잠자리에 누워 진실로 완전한 형태의 비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말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지금까지, 앞으로도 절대 누구에게도 공유되지 않을 이야기. 죽음 후에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하면 느껴지는 막막함, 답답함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누구에도 공유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는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단편적인 생각들은 응당 그랬겠지만 편집되어 라벨이 붙여진 채 분류된 생각은 아마 어떤 식으로든, 누구에게든 공유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쩍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생각의 궤도 너무 다르고, 어떤 수식도 없어야 하는 날것의 생각을 맥락에 따라 이래저래 사족을 붙여 전하다 보면 그 핵심은 결국 호도되어, 대화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한다. 모두의 생각은 존중받을만하고 누군가의 진리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라는 것은 너무도 너무도 공감하고 확신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타협하지 않는 내 생각과 철학은 더욱 확고해져만 간다.
설득의 성공이란 이해관계에 따른 일시적이고 계약적인 행위로 느껴지기에 주변인과의 대화가 점점 무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굳이 대화할 필요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언변에, 행동, 말투 하나하나에 묻어 나오는 내가 인정 못할 그 모습들에 그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내 솔직함을 잘 가공하여 녹여내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말로써, 그리고 글로써. 이곳에서는 이곳 나름대로, 다른 곳에서는 그곳 나름대로.
또한 드러내지 못한 솔직을 안고 가는 미학에 관한 것이다. 비록 우주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공허함일지라도,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못할 막막함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