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의 어떤 모습들을 그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상태이거나 이미 전역 후인 상태이더라도 여전히 군인 때와 같은 체지방이 적은 상태, 그 시절스러운 빈티지함이 녹아있는 싸구려 보세 의류들, 그리고 밤 10시, 상스러운 번화가와 그 주변 분위기, 모텔, 발라당 까졌지만 왠지모를 순수함이 녹아 있는 그때 그 여자들이 그것입니다. 마치 드라마를 감상하듯 그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면 시행착오 그 자체에서 헤엄치고 있던 제 자신이 뭐랄까 조금은 애틋하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여자를 한 명 한 명 만나며 완성해 갔던 나의 대화 템플릿들. 지금도 수리보수를 통해 활용하고 있는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사촌누나에게 추천받았던(사실 추천받지 않았어도 읽을 수밖에 없었을 듯한) 무리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 책의 일부 구절이 머릿속에 정착되어 20대의 나를 움직이는 건전지로 작동했다는 건 조금은 웃픈 일입니다. 그것을 동기라는 이름으로 브랜딩 하여 내 행동을 후행적으로 합리화하는 편리한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죠.
결핍을 채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가련한 스스로를 동정하며 그 모습 자체에 심취하기도 한듯합니다. 그때의 마음, 감정이 하나하나 쌓여 몇 년 전 제 인생의 가장 큰 방황의 밑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 스스로를 소프트웨어의 제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칭하자면, 위치 선정의 제왕이랄까. 마치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 인자기 같은. 인간은 숙명적으로 시간적 존재이지 않겠습니까. 시간의 흐름은 절대성에 변수를 더 해줍니다. 그 틈바구니에 존재하는 스윗스팟을 찾아 공략하는 능력. 가끔은 세상 무엇도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나의 능력을 시간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납득할 수준으로 검증하고 나니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것은 앞으로도 나는 이런 비 예측적인 능력을 또 한 번, 여러 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입니다.
내 마음엔 적당한 크기의 그릇이 여러 개 있습니다. 절대 무한한 수는 아닙니다만 여러 개입니다. 적당히 수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 그 개수가 늘어날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어찌 됐건 한눈에 어림짐작할 수 있는 수입니다. 그릇 하나에는 생각보다 큰 우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릇 입주 자격요건은 생각보다 까다롭지만 그 까다로움 만큼 보상은 확실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릇의 크기가 동일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태양계의 행성들을 비교하며 느껴지는 그런 압도적인 차이는 절대 아닙니다. '나'라는 우주의 운영 방침은 트렌드에 맞는 적절한 업데이트를 통해 운영자 자신과 그 수혜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워낙 성향이 넌지시, 아 가장 좋은 말이 떠올랐네요, 변죽을 울리는 것을 즐기다 보니 때론 모호해 보이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는 저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로 가공하고자 하는 고민도 항상 곁들이고 있지만 핵심적인 방침은 끝까지 유지할 생각입니다. 지금 이 글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또 변죽을 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