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burden) 2화

by 전야감

늘씬한 승무원의 보기 드문 적극적인 대시는 민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맥락 없는 첫 연락으로 시작하여 그와 공식적인 대화가 시작되었고 같은 업계 종사자면서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녀의 대화는 그 어떤 기술이나 계획 없이도 눈 덮인 산꼭대기에서 굴려놓은 작은 눈 뭉치처럼 속도를 내며 절로 불어나갔다. 연락이 시작된 지 3주 만에 카타르의 하마드 공항에서 3시간 동안 겹치는 스케줄을 확인하고 둘은 첫 만남을 약속하였다. 그 만남전 마지막 근무 중에는 설렘 때문에 승객에게 건네는 물 잔을 든 수희의 손이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그 물 잔을 건네받은 승객은 첫 비행을 하는 초보 스튜어디스라고 생각했으리라.


근무를 마무리하고 그를 보러 가는 발걸음.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여객기에서 나와 근무자용 통로를 향한다. 여러 번 와본 하마드 공항의 통로이지만 수희는 그날만은 그 길이 다르게 느껴졌다. 마지막 귀퉁이를 돌아 출입국 심사소를 통과하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로비 중간의 램프 베어. 이 공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 고가의 예술품보다 더 빛나는 존재가 바로 그 옆에 서있었다.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부터 이미 수희는 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안면의 근육들을 붙잡고 있는 마지막 실이 튕겨나가듯이 팅- 끊어져 버리며 얼굴에 미소가 퍼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희는 민철과 처음 사적으로 만남을 가졌으며 그것이 부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싱그러운 미소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면, 그와 함께 있자면 세상 근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미소만큼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 하나하나가 솜사탕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언젠가 들었던 친구의 남자친구처럼 상스럽거나 날이 선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화라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그들 만남 사이사이의 빈자리엔 낭만이 뭉게뭉게 채워졌고 그렇게 만난 지 1년 뒤에는 자연스레 결혼을 논할 수 있었다.


"자기야, 결혼하면 우리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음.. 나는 시험 준비를 계속해야 될 거 같아. 아무래도 기장되는 거 포기 못하겠어."


"그래, 뭐 나도 우리 나중을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시간이랑 돈이 좀 들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게 맞는 거 같고 그렇게 하고 싶어."


남편은 5년간 해온 스튜어드를 그만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더 위로 가고 싶어 했다. 이제 비행기에서 승객들을 돌보는 것이 아닌 그 승객들을 이끌고 목적지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하지만 남편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수희가 그것을 믿고 지지하기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해야겠다는 필요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고 그저 내 미래의 동반자가 될 이 남자가 하고 싶은 대로 두고 싶었다.


잠시 힘든 거 같이 이겨내지 뭐. 나도 돈 못 버는 거 아니니까 내가 충분히 벌 수 있어.


수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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