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들의 대화는 식당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비행운이라는 책이 보이자마자 내 입은 터지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노래와 가수에 대해서는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그 노래가 이 책을 모티프로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읽고 싶기도 하였다.
"와 진짜 너무 신기해요. 저 오늘 하루 종일 이 노래 듣다 왔는데 비행운이라는 노래 아세요?"
"그래요? 저는 처음 들어요"
"그렇구나 사실 이 책이.. 어쩌고저쩌고"
비행운의 유명한 그 구절. 내가 먼저 읽고 와이프가 나중에 읽으며 밑줄을 쳐뒀다.
대화를 트기 너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고 만남과 동시에 동질감이 생긴듯하였다. 그녀는 20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같은 건물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과자 사듯이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구입한 책을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기도 해서 동일한 책도 여러 번 구매하기도 하는.
저녁 식사 장소는 만남 장소에서 몇 걸음 정도만 옮기면 되는 일본식 돈까스 집이었다. 돈까스를 좋아하는 내가 정한 곳이었는데, 그 이후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월 5일마다 찾아오기로 하였다.
공동캘린더에 입력된 돈까스데이. 올해는 일본여행 중이라 시즈오카의 어느 돈까스집에서 먹었다.
자리에 마주 앉아 처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느낀 첫인상은 사진보다 낫다였다. 사실 앱상에서 본 상대의 사진은 개인적인 기준으로 별로였다.(앱상의 사진이 작은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톡 프로필 사진은 그것보다 훨씬 나았고 실물은 더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와이프에게 왜 앱에는 그런 사진을 올려놨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잘 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무엇인가를 겉으로 예쁘게 보이도록 꾸미는데 능숙한 사람은 아니다. 그게 그녀가 더 좋은 점이기도 하고.
우리는 일반적인 소개팅처럼 식사와 커피의 프로세스를 거쳤다. 식당에서 큰 길하나만 건너면 있는 높은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카페로 향하였다. 산꼭대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도시의 뷰가 한 눈에 들어와 낭만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취직을 했다가 여기로 내려왔어요. 본가는 서울이거든요. 부모님은 서울에 계세요"
"서울 분이시군요. 본가는 자주 올라가세요?"
"처음에 왔을 때는 잘 안 가려고 했어요. 이곳에 더 정을 붙이려고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말에 남아있어도 할 게 없더라고요. 모임이 있어서 서울을 자주가요."
그녀는 정말 범상치 않은 포트폴리오를 지닌 인물이었다.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인물이고 그 관심사를 확장할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본인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제주, 독서, 여행, 와인, 산을 꼽았다. 자기계발모임에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이는 와인 아지트도 있다고 하였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와인은 관심사 밖의 것이었지만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신기하게 들렸고 내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하였다.
와인 외에도 각 키워드별로 단편적이지 않은 눅진한 경험들이 묻어 나왔고 덕분에 대화는 끊임없이 넓게 넓게 펼쳐졌다.
만남을 마무리 짓고 헤어지기 전 그녀는 자신이 오늘 구매한 2권 중 한 권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나는 자연스레 비행운을 골랐다.
그녀는 비행운이라는 노래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건널목 한 귀퉁이에 서서 저쪽으로 가는 상대에게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나는 주차한 곳으로 가기 위해 이쪽 건널목을 건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소개팅이 마무리되었다.
만남 후에 이어진 톡에서는 양쪽 모두 힘이 있었다. 이 인연을 놓지 않으려는 힘.
그리고 다음날,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