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눈 구경할까요?
호감과 즉흥성의 황금비 배합
그녀는 연구원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많은 직업이다. 하지만 지인 중 단 한 명도 연구원은 없었다. 처음으로 연구원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꽤나 유능했다. 최근에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실장으로 승진했다고 하였다.
그녀 역시도 교사를 이리 가까이 대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첫 만남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생활 궤적을 공유하며 신기해했고 한편으로는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당시 교무실 나의 자리
만남 다음날 아침 그녀에게 톡이 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여유롭게 출근했네요.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굳이 다음날 아침에 선톡을 한 것은 호감의 표시로 볼 수 있으나 첫톡만에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클로징 멘트를 하는 것은 부정적인 신호로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연락을 차단하고자 오히려 연락을 선점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밥값을 먼저 계산하는 형태와 유사한. 나는 후자에 더 무게감을 두고 이렇게 답하였다.
[네 좋은하루되세요 ㅎ]
그리고 점심시간쯤 다시 연락이 오길
[점심은 학교 식당밥 드시나요?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때 선생님들 밥먹는걸 못본거 같아..ㅎㅎ]
[학교식당밥먹죠 ㅋ 학교마다다를순 있는데 교사용 배식대가 있기도해요. 오늘은 불낙비빔밥이 나왔네요]
이렇게 또 짧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방학을 눈앞에 둔 마지막 주의 학교는 생기가 없고 게으르다. 그런 학교를 뒤로한 채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하늘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밤 10시가 다 될 때쯤 그녀에게 또 한 번 톡이 왔다.
[와~ 순식간 밖에 눈 엄청 왔네요. 9시에 들어올 때만 해도 폴폴 날리는 수준이었는데]
[눈와요?? 오 많이오네요 정말]
[집에서 산 보인다했죠? 낼 아침에 보믄 이쁘겠네여ㅎㅎ]
[와 진짜 눈 이쁘게 온다 ㅋㅋ]
눈을 빌미로 대화를 이어가던 중 문득 나는 이 눈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오라면 나올수 있어요?ㅋㅋ]
[나가면 안될거 같아여ㅋㅋ]
[큰일나겠죠?ㅋㅋ]
[ㅋㅋ근데 나가면 모해요? 커피집도 문 다 닫았는디]
[뭐 편의점에서 커피사서 드라이브 하죠 ㅋㅋ 눈구경하믄서 ㅋㅋ]
[흠..재밌을거 같은데.. 노메이크업 감당 가능합니까?]
나의 호감과 그녀의 호감, 나의 즉흥성과 그녀의 즉흥성이 황금비 배합으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장난 아니게 눈이 왔다. 특히 자연재해와 거리가 먼 나의 지역에서는 더더욱 보기 힘든 풍광이었다.
각종 이유로 집을 잘 뛰쳐나가는 아들은 엄마에게 그리 치밀한 변명 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도로에 들어서는데 이건 보통 위험한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복이 흰 눈이 쌓인 도로 위로 작은 아반떼는 운명일지 모르는 그녀에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다가가고 있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녀를 발견하였다.
"잠시만요, 눈좀 치우구요"
눈발 사이로 그녀는 자신의 차유리에 쌓인 눈을 치우고 그 위로 박스를 덧대고 있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내 차에 오른 그녀와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맞이했다.
이 눈보라에, 그것도 평일 늦은 밤에 끝끝내 만나고 마는 서로의 추진력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남녀의 호감에 대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차를 끌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우리는 따뜻한 유자 음료를 구입하여 다시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