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집 가서 먹자

Happy Birday to You!

by 전야감

2021년 1월 8일. 겨울방학식이자 내 인생 처음으로 학교에서 맞은 생일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특성화고에 근무 중이었기에 일반고 교사가 겪는 겨울방학 중 생기부 폭탄 걱정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로인한 홀가분한 마음과 다음날 그녀를 만날 생각에 한참 들떠있는 중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를 맞이하였다.


학교 특성상 여학생이 별로 없는 학교였는데 내가 담임인 반에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내 생일임을 알고 그 학생 주도하에 우리반 학생들이 나를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한 것이었다.

생일.jpg 그 당시 학생이 찍어준 사진, 어떻게 이런 사진이 다있는지 찾아보며 신기신기

나는 섭섭함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날 챙기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상대방을 잘 챙기지 못한다. 학교에서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행동이 자칫 인기놀이가 되는 모습이나, 나조차 깊지 않은 인사이트를 강요하는 것을 경계하기에 가급적 학생들을 건조하게 대하고 학생들이 과하게 나를 신경쓰지 않고, 챙기지 않음에 보통 안심한다.

(대신 나와 주파수가 맞는 소수의 학생들과 아주 깊게 소통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리 그런 나여도 감회가 새로웠다. 예상 못 하기도 하였고 아무래도 학교에서 축하받는 첫 생일이었기에. 그 진실한 소감을 학생들에게도 전하였다.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그런 특별한 생일 축하로 방학이 시작되었다.


KakaoTalk_20230506_205237573.jpg 해피 "버드"데이 축하 받아본적 있는가? 나는 받았다^^


다음날 그녀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였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맛집으로 그녀를 픽업하여 데려가기로 하였다. 만두샤브전골집인데, 첫 학교에 발령 났을 때 알게 된 집이다. 처음 맛본 이후 너무 맛있어서 주변 지인을 한 번씩은 데리고 갔으며 예외 없이 모두가 만족했던 곳이다.


그녀를 만났고 차에 태워 식당으로 향하였다. 차로 25분 정도는 이동해야 할 거리였다. 그러는 중 나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술을 어디서 어떻게 마시는가였다. 그 당시는 모두가 알다시피 한참 코로나로 인하여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을 때였다. 식사를 끝마치면 7시 반은 넘을 것이고.. 이동하면 8시는 될 텐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야채와 소고기를 샤브로 먹는데 어떤 사람들은 소고기를 한 번에 다 넣고 익혀 먹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선호하지 않기에 이 집에 와서 소고기를 익히는 전권은 항상 내가 가져간다. 그래서 적절한 양을 적절히 익혀서 얼른얼른 배분한다. 그렇게 챙겨준 소고기가 그녀에겐 감동이었다고 했다. 챙김 받는 기분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단 차에 올랐다. 다시 집 쪽으로 돌아갔다. 이제 뭔가 어찌해야 할지 액션을 취해야 했다. 사실 막연히 머릿속에 플랜 하나가 있었다. 친한 친구가 살던 원룸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 계약이 2달 남은 상황에 사정상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비어있는 상태지만 혹시 필요하면 편하게 쓰라고 했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이 기본 옵션만 있는 좁디좁은 원룸이었다. 한 주 전쯤 친한 샘들 몇 명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셧다운으로 인해 갈 곳이 없어 거기에 들어가 두어 시간 보낸 적이 있었다.


"이러이러한 곳이 있거든? 지금 다 문 닫아서 갈데없는데 거기 가서 그냥 맥주 한잔할까?"

"음..."


물론 이런 제안이 환영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셧다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고, 이제 겨우 3번째 만남이지만 우리 사이에 그래도 영혼으로 통하는 신뢰와 래포?(나 혼자만의 생각^^), 그리고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너무 아쉬웠기에 그래도 수락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는 좀 그렇고.. 그냥 우리 집 가서 먹자"

"어? 그래도 돼?"


돌발스런 역제안에 조금은 당황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기민하게 그녀의 집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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