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어느 공원에서 펄펄 내리는 함박눈 속에 파묻혀 짙은 회색과 빨간색이 섞인 옷을 입고 있던 모습
미끄러운 빙판길을 가던 가족이 함께 탄 자동차가 별안간 중심을 잃고 회전하여 가드레일에 충돌하던 모습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에 녹색 옷을 입고 둘리 주제가와 어른들은 몰라요를 췄던 모습
자연재해와는 거리가 먼 나의 도시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려 눈에 무릎까지 빠져가며 가파른 등굣길을 오르던 모습
수능을 마치고 하릴없이 빵집 근처를 배회하는 고등학생 3명에게 마감빵을 주신 빵집주인의 모습
훈련병 시절 총기조립시험 중 조급한 마음에 약실을 두드리다 손에서 터진 피가 방독면을 빨갛게 물들인 모습
취직은 뒷전인 채 낮잠에서 깨어 공부하던 독서실 옥상에 올라 친구와 함께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첫 흔적을 남기던 모습
두 주둥이만 있으면 방 안에서 사흘밤낮을 떠들어 댈 수 있는 친구와 방에서 나와 함께한 첫 일본여행 중 시모노세키항을 바라보며 새해를 다짐하던 모습
편도 50분이던 출근길이 폭설 탓에 돌아오는 퇴근길이 3시간 반이 되었던 모습
두 번째 만난 그녀와 차 안에서 폭설을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고 부부의 인연을 직감하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