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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Dec 30. 2023

감사하다!

14문장

올해 2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 교무실에 비고가 있었다. 선생님 한분이 자전거를 타다가 머리를 크게 다치신 것이다. 의식이 없으셨고 큰 수술이 진행됐다. 곧 수시가 시작하는 마당에 학교 측에서도 난감한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기간제 선생님 한 분을 모시게 됐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구체적인 입시상담과 디테일한 담임업무는 학년부장님이 맡으셨지만 어쨌든 최소한 수업을 들어가실, 행정적으로 담임을 맡으실 분은 필요하니까.


나이가 지긋하신 여사분이셨다. 면접을 보고 오신 교장선생님께서 이화여대를 나오셨다고 그분에 대한 정보 하나를 농을 곁들여 전하셨고 교무실 선생님들도 그 유일한 정보에 비추어 그녀의 성격을 가늠해 보았다.


따뜻하고 우아분이셨다. 크리스천이셨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자연을 사랑하셨고 소녀 같은 미소와 은은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약간의 아련함, 이유 모를 서글픔을 전해주시는 분이셨다.


시끌벅적한 입시와 더불어 내 교직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2학기가 그렇게 지나갔고 12월 29일 자로 계약이 만료된 그분에게 우리 교무실에서 작별의 작은 선물을 전하였다. 평소에 '감사하다!'를 아끼지 않은 그분에게, 그리고 감을 자주 깎아주시던 그분에게, "감 사왔다!"는 드립을 꼭 하고 싶어 내가 제안한 감선물을 꽃다발과 함께 전해드렸고 눈물이 그렁해지신 눈망울에 아울러 앵콜 "감사하다!"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따뜻하고 감사한 2학기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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