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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an 08. 2024

미니스커트

16문장

남자는 수업에 들어가기 전 운동장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앞을 무심히 지나며 머리띠를 고쳐 묶는 체육과 그녀는 다음날도 그를 벤치에 앉히는 이유였다.


친구들에게 그녀의 정체를 수소문하여 어렵게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 가슴이 터질 듯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자 그의 친구는 낮술을 권했고, 덕분에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혼비백산 약속장소로 달려가는 중 취기가 멈추게 한 꽃가게에서 문득 손에 쥔 꽃 한 송이, 사과를 대신한 장미와 3시간 내내 혼자 떠드는 그의 너스레에 그녀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그와의 데이트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당시 여학생이 짧은 치마를 입고 등장하는 날에는 그 시골 대학교가 웅성웅성 들썩이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어머니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께 무표정으로 데면데면하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 어머니에게 저렇게 싹수없이 대하는 그녀를 자신의 신붓감으로 둘 수 없었다.


그날부터 싸늘해진 그와 그녀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갔다. 몇 달 뒤 임용고시 학원에서 만난 그녀가 꼴 보기 싫어 그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항상 맨 앞자리에 앉곤 했다.



어느 날 둘을 아는 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너 걔랑 왜 헤어진 거야? 어머니가 치마 입은 거 안 좋게 생각하실까 봐 그날 그랬다는 건 알고 있었어? 걔가 너랑 헤어지고 몇 달 동안 얼마나 울고불고했는지 알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가끔 그녀를 추억하고, 아쉬워하고, 상념에 젖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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