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문을 열면 늘 같은 풍경이 나를 맞는다. 정리된 화일들, 가지런한 펜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물건들틈 바구니를 한바퀴 돌며 먼지를 걷어내며 손님을 맞이한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오늘도 한 권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 베니스의 상인, 돈으로 시작해 마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안토니오는 돈을 빌린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서. 사랑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 그 사랑을 돕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떠안는 우정.
이 선택은 너무 자연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지나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미 질문이 숨어 있다.
사람은 왜 타인의 인생에 이렇게 쉽게 책임을 지는가.
샤일록은 돈을 빌려준다. 조건은 잔인할 만큼 정확하다. 기한을 넘기면 살 1파운드. 우리는 이 순간 그를 악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묻는다. 약속은 약속이 아닌가. 법은 모두에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돈은 감정을 묻지 않는다. 숫자는 늘 명확하고, 계산은 늘 공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보다 돈을 믿는다. 이 이야기는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주 천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