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어른으로 살기 '빅'

세분화와 전문화로 잃어버린 것들

by 손윤


어린 시절, '19금' 영상 등을 마음껏 볼 수 없어, 한 번쯤은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빅'(Big/1988년)의 조시도 그런 12살 소년이다. 물론, 조시는 그런 발랑 까진 목적이 아니라, 키가 작아서 타지 못한 놀이기구를 즐기기 위해서다. 어느 날 갑자기 12살 소년(영화 도중에 13살이 되지만/데이빗 모스코 분)이 35살 어른(톰 행크스 분)이 된 뒤, 다시 소년으로 돌아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그 속에서 우리는 어른이 된 뒤에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야구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살펴보자. 12살 조시는 제대로 된 배트와 글러브가 없지만 단짝 빌리와 둘이서 야구공 하나로 야구를 직접 즐긴다. 반면, 35살 조시는 양키스타디움의 좋은 좌석에서 야구를 보며 양키스 점퍼를 살 금전적 여유가 있지만, 더는 야구를 직접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볼 뿐이다.


야구계가 프로야구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사회인 것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야구를 직접 즐기는 이가 줄어드는 구조다. 그런데 성인의 동네야구, 즉 사회인야구를 즐기는 이도 적지 않다. 다만 그 사회인야구를 즐기는 이 가운데, 어린 시절 야구를 즐긴 이는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동네야구나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미국과 달리 최근 우리나라는 동네야구를 하기 어려운 데다가, 리틀야구 역시 전문적인 선수를 길러내는 구조다. 그 결과, 어린 시절부터 사회인야구로 이어지는 구조라기보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야구를 경험하는 이가 적지 않다(게다가, 일부이지만 어릴 때부터 엘리트 야구를 시작해 돈을 받고 사회인야구를 뛰는 '직업 선수'도 있다). 이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휴일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까지 여러 팀과 리그에서 네다섯 경기를 뛰는 야구중독자를 볼 때는 그 열정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물론, 그 부인이나 가족, 애인에게는 안타까움도 느끼지만.


여기에 성인이 되고 나서야 직접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 소년 시절에 야구를 즐기기 어려운 것은 예전과 비교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방과 후, 학원을 돌아다니기 바빠, 친구와 함께 야구 등을 즐기는 것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얘기가 됐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와 그 시간의 결정권이 생긴 성인이 되어서야 야구를 즐기기 시작하는 이도 나온다.

다만 최근의 사회인야구를 보면서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야구 장비의 지나친 고급화는 물론, 야구 자체도 지나치게 프로야구 흉내를 내는 점이다. 아주 예전에는 왼손잡이 포수나 유격수, 3루수 등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야구 자체를 즐기므로, 왼손잡이 유격수가 송구 등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그 선수의 선택과 장점을 살리려고 했다. 즉, 전문적인 야구와는 차별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해라는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최근에는 출루율이나 장타율, OPS는 기본이고 더 복잡한 세이버메트릭스에 관심을 두며, 그것에 얽매이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올린다. 리틀야구를 비롯한 소년야구는 물론이고, 사회인야구의 매력은 무엇일까라고. 그것은 '기량'이나 '숫자'가 아닌 같은 취미를 가진 이와의 '만남'과 그것을 통한 기억의 '공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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