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의 '로스트 & 파운드'
명배우와 명감독의 공통점
1980년대 중•고교를 다닌 세대에게는 '아이돌'과 같은 미녀 3인방이 있었다. 잡지 사진 등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써서, 이른바 '3대 책받침 미녀'로 불린 그들. 브룩 실즈와 피비 케이츠, 그리고 소피 마르소다. 실즈가 백인 미녀의 전형이라면, 케이츠는 동양과 서양이 혼합된 듯한 신비감이 있었고, 마르소는 우수에 젖은 눈망울이 매력적인 프랑스 요정과 같았다. 각자의 매력 포인트는 달라도, 청순함과 풋풋함이라는 절대무기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피 마르소의 주된 무기는 익숙함이다. 외모가 다소 동양인을 닮아, 브룩 실즈의 경우처럼 피부색과 키 등에 따른 거부감은 덜하다. '라붐'(La Boum/1980년)에서 풋풋한 소녀로 데뷔한 뒤, '여학생'(L'Etudiante/1988년)을 통해서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세계에 풍겼다.
그녀와 실즈나 케이츠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성에 있다. 라붐의 성공 이후, 얼굴만 뜯어먹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배역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얼굴만 예쁜 배우가 아닌 연기력이 뛰어난 예쁜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장르에 출연한 만큼, 이런 데도 나왔나 싶은 영화도 있다.
'로스트 & 파운드'(Lost & Found/1999년)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아담 샌들러와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처럼 느껴지는 데이빗 스페이드가 출연하는 코미디물이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스페이드가 첼리스트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마르소에게 한눈에 반해, 작업을 거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 속에는 여러 가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있지만, 그 웃음에 공감이 전혀 안 가는 게 문제.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코미디가 배제된 단순한 연애물로 끝난다. 또한, 소피 마르소의 매력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고작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 정도가 인상에 남을 뿐이다.
그래도 LA 다저스 팬이라면, 한 번쯤은 봐야 할 영화다. 스페이드가 다저스 광팬으로 나오며, 다저스 모자를 쓴 마르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어째서 이 배역에 소피 마르소를 기용한 것일까? 굳이 프랑스 배우에게, 그것도 비싼 출연료를 주고 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소피 마르소가 달달한 로맨스를 연기한 것도, 우스꽝스러운 과장된 몸짓이나 말 등을 하며 연기 변신을 한 것도 아니다.
미스 캐스팅. 영화의 흥행이나 돈줄을 쥔 제작자의 의향이 강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르소 입장에는, 2년 전 안나 카레니나 등에 출연한 것도 있어,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라 출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프로야구 선수보다 행복하다.
기본적으로 어느 작품에 출연할지는 그 배우에게 선택권이 있다. 영화의 성패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이다. 반면, 프로야구 선수는 다르다. 선수 자신이 팀을 선택할 수 없다. 신인 드래프트라는 제도를 통해, 팀의 간택을 받는다. 그러므로 팀과의 궁합이 중요하다. 팀이나 감독의 방침과 기존 전력에 따라, 그 선수의 야구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재능이 있지만 입단한 팀에 그 포지션에 젊은 스타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스타 선수가 부상이나 FA(자유계약선수) 등으로 팀을 떠나지 않는 한 플레이의 기회를 얻기는 어렵다. 혹은 엇비슷한 기량이지만, 외야수로 발이 빠른 선수와 장타력이 돋보이는 선수가 있다고 하자. 감독이나 팀의 방침이 빠른 선수를 선호한다면, 장타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많은 출장 기회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작은 차이가 선수의 인생을 크게 바꾼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이치로도 그렇다.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치로를 1군 무대에 기용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구장 크기의 변화에 따른 팀 방침의 변화다.
1990년대에 일본 프로야구의 퍼시픽리그는 큰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구장의 크기가 달라진 것이다. 즉, 작은 구장에서 큰 구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야구도 달라졌다. 이전까지 외야수에게 수비보다는 공격, 그것도 장타력이 요구됐다면, 외야가 넓어진 만큼 강한 어깨와 주력이 중요하게 됐다.
그것이 이치로의 1군 데뷔로 이어진 것이다. 만약, 야구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치로는 어떻게 됐을까. 많은 출장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야구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트렌드도 변화한다. '투고 타저'일 때와 '투저 타고'일 때의 야구는 다를 수밖에 없다. '투고 타저'인데, '투저 타고' 방식의 야구를 하거나, 거꾸로 '투저 타고'에서 '투고 타저'의 야구를 해서는 이기기 어렵다.
이것 역시 미스 캐스팅. 명배우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떤 배역이든 해낼 수 있는 연기력은 물론, 작품을 볼 줄 아는 눈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야구의 명감독도 팀의 전력과 야구 흐름에 맞는 지휘를 할 줄 아는 이가 아닐까. 당연히 그런 감독의 생명은 길고, 찬사도 이어진다. 과거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혹은 그 성공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보통의 감독과 명감독의 차이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