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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 Sep 07. 2022

승패를 알고 보는 듯한 '버닝'

야구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경기 승패를 아는 상황에서 야구 경기를 지켜보면 어떤 느낌일까. 승패 외에는 득·실점, 이닝별 득·실점 상황, 투구·타격 내용 등을 모르므로, 나름 흥미롭게 지켜볼 수도 있다. 반면, 어느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를 아는 만큼 흥미가 반감돼 재미 따위가 있을 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 '버닝'(The Burning/1981년)은 전자에 속한다.


영화 초반에 이미 살인마는 물론, 그 무기와 동기 등을 친절하게도(?) 모두 알려준다. 그러고 나서 중반까지 긴장감만 고조한다. 이윽고, 이쯤에서 난도질하는 장면이 나올 법하다고 생각될 때, 음악과 영상도 긴장감을 더한다. 두근두근. 관객은 비명을 지를 준비를 마쳤지만, 그것은 '훼이크'. 그렇게 변죽만 울린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범인을 알려주는 것은,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강력한 범인(악당)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둘째는 주인공과 범인과의 심리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것과는 인연이 멀다. 살인마가 흉측한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다. 여기에 영화는 주인공과 범인이 아니라 관객과의 심리 게임을 즐긴 듯하다.


여러모로 '13일의 금요일'과 닮았다. 아류작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참신함은 있다. 예를 들면 슬러시 영화의 공식을 깬 점이다. 대부분 슬러시 영화에서 죽는 이는 머릿속에 섹스만 가득 찬 어른들(때론 아이나 소년)인데, 크랍시의 가위는 일반적인 아이들도 피해가지 않는다. 특히, 뗏목 위에서 살육을 펼치는 장면은 엄지 척!



영화 속에서 야구 장면이 등장한다. 정확하게는 소녀들이 펼치는 소프트볼 경기. 잘 치든 못 치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등 활기가 넘친다. 그것을 지켜보는 남성 제군의 눈길도 뜨겁다. 반면, 관객은 조만간 죽을 줄도 모르고 환호작약하는 풋내기로 바라볼 것이다.


소프트볼 경기를 소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곳에선 소년들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다만 소녀들의 뜨거운 눈길만 없을 뿐. 게다가, 캠프에 참가한 누구나 자기 글러브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이 장면은 어떻게 될까?


아마 소프트볼을 포함한 야구는 축구로 바뀌어 있을 것이란 데 한 표! 그 근거는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데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 미국에서도 야구가 메이저 스포츠가 아닌 마이너 스포츠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정보이지만, ESPN의 조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시청자의 평균 연령은 53세로 NFL(47세)과 NBA(37세)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여기에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시청자의 50%는 55세 이상이며, 포스트시즌 시청자 가운데 6살부터 17살 사이의 유소년은 4%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결과에 대해, 어느 전문가는 "야구계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년 정도는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겠지만, 그 후로는 마이너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유소년 사이에 야구 대신에 축구가 뜨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아이가 야구를 하는 데 반대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역시 돈. 야구는 장비부터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둘째는 뜻밖에도(?) 지도자의 수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어린 선수를 대하는 지도자의 태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강압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꼴을 보면서 야구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게 속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전에 초등학교 야구부의 경기를 몇 게임 지켜본 적이 있다. 이전과 변함이 없는 야구가 펼쳐졌다. 투수가 공 하나 던질 때마다 양쪽 벤치에서 고함에 가까운 조언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때로는 필드에 선수를 세워둔 채 훈계를 하는 지도자도 있다. 드물지만 아동학대에 가까운 행위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 행동을 지도자 자신은 열정의 표시로 여길지 모르지만, 선수를 장기짝으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함께 경기를 지켜본 어느 야구인은 "저렇게 훈계를 듣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야구를 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한탄했다. 실제로 최근 초등학교 야구부에 지원하는 학생 수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수를 관리, 혹은 지도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감독이나 코치도 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리틀리그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리틀리그에서는 적어도 경기 중에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초등학교만큼은 아니더라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야구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지도자에게 배운 선수가 유니폼을 벗은 뒤, 그런 지도자가 된다. 악순환. 그러면서 감독 등은 야구소년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낯짝을 살짝 당겨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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