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가끔 난 혼자이고 싶다. 너무 많은 정보나 누군가의 수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말이다. 나 혼자만 아는 동굴 같은 곳이 있다면... 예전에 친구와 로또에 당첨되면 무얼할까에 대해 의미없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대출금을 갚고 노후 대책으로 아파트 한채를 구입하고, 주식 투자도 하고 싶다는 나의 평범한 소원과는 다르게 친구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그곳에 갔다가 일상적인 퇴근을 하며, 오롯이 자신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가막힌 생각 아닌가. 사실 나도 늘 그런 공간을 꿈꿔왔다.
결혼과 육아, 맞벌이로 지친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일지라도 괜찮다. 내가 가진 고민거리도 넘쳐나는데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며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고,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며 우리네 삶에 대한 쓸데 없는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흘리고 다닌다. 또 그에 알맞은 호응을 해야하지 않는가.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너무 힘들다.
에코와 나르시스_출처 네이버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에코(메아리)는 말이 너무 많은 수다스러운 요정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요정 친구와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한 에코는 바람 피우는 현장을 덮치려고 온 헤라를 보고 놀라, 너무 많은 수다를 떨게 된다. 자신의 친구가 헤라에게 벌을 받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소리에 제우스가 달아나 버리자, 헤라는 분노하여 에코에게 평생 남의 말이나 따라하라는 저주를 내린다. 자신과 상관 없는 일에 나섰다가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숲속에서 평소에 짝사랑하던 나르시스를 만난 에코는 나르시스의 말을 따라하다가 나르시스의 비아냥에 수치심을 느끼곤 동굴로 숨어버린다. 헤라에게서 자신을 구해준 에코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요정친구들은 그 장면을 보고 신탁을 전하는 사제에게 에코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찾아갔지만, 감히 헤라의 저주를 풀순 없었다. 대신 에코를 욕보인 나르시스에게 저주를 내리기로 했는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되는 저주였다. 과연 에코는 나르시스가 저주를 받길 원했을까? 그건 친구들의 오지랖이 아니었을까.
나르시스는 저주를 받은 후, 도망가는 사슴을 쫓다가 우연히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수선화가 되었다. 결국 나르시스를 사랑하는 에코는 나르시스를 떠나지 못하고 그를 찾는 친구들의 외침을 따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동굴에서 삶을 마감한다. 상대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다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그녀는 그녀만의 동굴에 갇힌 셈이다.
에코와 나르시스, 그녀의 친구들이 조금만 말을 아끼는 신중한 이였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