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없어.그냥 아무나 되려고." 어린 시절 내 꿈은 작가였지만 누가 물으면 아무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보며 한심해하는 누군가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근사한 거짓 꿈을 만들었다. 누군가 꿈을 물으면 그건 대부분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그들이 궁금한 건 내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그저 생활통지표에 들어갈 부끄럽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는지 였다. 그러니까 나는 생활통지표에 적을 그들이 생각하는 형식적이지만 근사한 꿈을 정해야 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선생님이나 과학자가 꿈이었고 나처럼 작가가 꿈인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내 짝꿍의 꿈은 선생님이었고 그래서 생활통지표에 적힌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나는 내 짝꿍의 꿈도둑이었다.
내가 쓴 선생님이라는 꿈의 배경은 마치 취중진담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아는 이들은 다들 술에 취하면 진심이 나온다고 하지만 나는 참 이상하게도 술에 취하면 오히려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그 거짓말은 주로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평상시에는 직언을 많이 하는 내가 술에 취할 때만큼은 내 사회생활을 조금 쉽게 해 보자는 나름의 진심이었을 거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술을 마시다가 과하게 칭찬을 했다든지 사랑고백을 했다면 그건 다 거짓말이다. 예를 들어 "너 머리스타일이 참 예쁘다 나도 너처럼 바꿔볼까 봐"라고 말했다면 그건 "너 이번 머리 망했어"라는 뜻 정도로 해석하면 되었다. 그게 바로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선생님인 이유였다. 그들의 형식적인 질문에 대한 그들이 원하는 형식적인 대답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형식적인 질문을 하던 이들과 형식적인 대답을 하고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형식적인 내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제 지나온 나에 대해 생각해 볼 나이가 되니 그때의 나는 어린 시절의 꿈처럼 진짜 아무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정말 꿈이 이루어진 거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아무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무렇게나 살았더니 정말 아무나가 된 것이다. 참 기특하다. 아무나가 되어도 괜찮은 거였구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됐던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꿈을 버리자 나는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었다.내 안의 본연의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굴레를 벗어던져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려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자신의 꿈을 버리려면 그냥 아무나가 되자. 그러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바라는 아무나가 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