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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돈가스가 싫다고 하셨어

by 김소연





들어 옮길 수 있을 만큼만 먹어라 _쯔양


제목 _ GOD <어머님께>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인용




또 먹니?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뱃속에 그지가 들었나?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밥을 찾는 나를 향해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그러면서도 늘 40킬로대를 유지하는 나를 신기해하기도 했다. 나는 쯔양이나 히밥처럼 한 번에 많이 먹지는 않아도 하루에 꽤나 많은 양을 먹어치웠다. 고등학생 시절엔 하루에 여섯 끼를 먹기도 했다. 차라리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엄마의 수고를 조금 덜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 위는 참으로 작고 또 소화력은 너무 훌륭했다. 나는 수시로 배가 고팠다.


수시로 배가 고픈 나를 데리고 다니는 일은 엄마에겐 큰 고충이었다. 어느 날엔가 엄마는 길 한가운데서 배가 고프다며 징징대는 나를 데리고 돈가스 가게에 들어갔다. 한데 웬일인지 엄마는 돈가스를 한 개만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돈가스가 나오자 엄마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돈가스를 직접 썰어 내게 건네주며 엄마는 배가 부르다며 돈가스는 싫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흔한 풍경은 아니었으니 엄마가 말한 대로 집 밥상에 돈가스가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엄마가 돈가스를 싫어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멜론을 사주지 않는 이유도, 말캉말캉한 황도가 아니라 천도복숭아만 사 오는 이유도 다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돈가스가 싫다던 엄마는 내가 조금 남긴 돈가스가 아깝다며 소스까지 싹싹 먹어치웠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잔소리도 조금 하신 것 같다. 그리고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찬밥에 물을 말아서 드셨고, 나는 엄마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엄마는 천도복숭아가 아니라 황도복숭아를 더 좋아한다.


내 소원은 어릴 적부터 많이 먹는 거였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 내 위가 원망스러웠다. 먹방 유튜버들이 늘어나면서 내 유튜브 구독목록은 먹방 유튜버들로 채워졌다. 누가 누가 더 먹나 시샘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언젠가 먹방유튜버 쯔양은 시골에서 삼겹살을 먹는다며 큰 박스에 고기를 잔뜩 담아서 낑낑대며 나르며 '네가 들어 옮길 수 있을 만큼만 먹으라'는 명언을 남겼다. 자기가 봐도 상황이 뻘쭘했는지 어디선가 들은 말이라고 했지만, 아마 영상을 보는 구독자가 한 말 같다. 자기 스스로 들지도 못하는 양의 음식을 한 끼에 먹어치운다니 어이없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는데, 애초에 내가 저렇게 한 번에 많이 먹었다면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내가 저렇게 많이 먹었다면 엄마와 돈가스 두 개를 시켜 배부른척하며 엄마가 돈가스를 양껏 먹을 수 있게 양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배부른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그날 내가 돈가스를 남긴 건 배부른 느낌이 싫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날 먹은 돈가스는 양이 조금 작은 편이어서 다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남긴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날 먹은 돈가스가 너무 맛있어서, 엄마 돈가스 맛있지? 그러니까 집에서도 해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밥상에 돈가스는 올라오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물반찬과 생선조림뿐인 밥상이었다. 어린 시절의 엄마는 나물과 생선조림을 좋아했고, 지금 엄마는 아웃백을 좋아한다. 엄마의 취향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의 어린 나는 엄마의 밥상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돈가스를 먹지 못하게 됐다. 돈가스를 보면 엄마가 생각나고 그건 추억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되었다. 지금의 돈가스는 내게 먹으면 속이 답답해지는 음식이다.


요즘엔 먹방 유튜버가 있어서 참 좋다. 난 오늘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의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 중이다. 오늘은 돈가스 먹방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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