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식

주인공은 엄마

by 야호너구리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이상하게도 흉터가 옅어지질 않는다. 굳은살이 박이는 게 아니라, 얇은 종이에 물이 스미듯 속으로 번져서 축축하게 나를 무너뜨린다.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겐 그랬다.


엄마에게 나는 늘 감정의 쓰레기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비유 말고는 특별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엄마는 누나의 자식들의 육아도 담당하고 있는데, 조카가 아프면 그 짜증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누나에게는 차마 풀지 못하는 그 날 선 감정들이 가장 무르고 만만한 나에게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우리 가족 안에서만 작동하는, 거스를 수 없는 물리법칙 같은 것일지도. 늘 저항이 가장 적은 곳으로 힘은 흐르기 마련이니깐.


그 법칙이 가장 요란하게 증명된 날이 내 결혼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한다는 그날, 엄마 지금 손님 맞이를 해야되는데, 사진을 왜찍냐며 사돈과 사진작가, 모든사람이있는곳에서 짜증을 냈다. 와이프는 어쩔줄 몰라하고, 나는 이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어떻게든 엄마에게 당근을 흔들어본다. 금방 끝난다. 이것만 하면된다. 라며 겨우 채근하여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간단한 컷이었고, 약 2분정도 걸렸다. 아마 이상황을 무마하려고 했기에 기냥 빨리촬영을 한걸로 넘어갔다)


그저 나는, 늘 그래왔듯이 모든 감정을 목구멍 아래로 꾹꾹 눌러 삼켰다.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혹은 화를 낼 자격조차 없는 사람처럼, 아니 이젠 저런모습은 워낙 익숙하다는듯이 처다보는 사람처럼.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결혼식 에서까지, 나는 결국 엄마의 감정을 받아내는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구나. 장소와 시간만 바뀌었을 뿐, 내 역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내 결혼식이지만, 오늘의 주인공을 나라는듯이 엄마는 무대를 장악했다. 여기도 나는 보조출연자일뿐.


누나결혼식때는, 엄마는 스타였고, 셀럽이었다. 회계사 딸을 의사 사위에게 시집보내는 엄마의 자의식 과잉을 아마 결혼식 천장을 뚫어버릴 기세였으니깐. 보잘것없는 직업끼리 결혼하는 내 결혼식이라서 더 저러나라는 피해의식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대형스타에서 그저그런 유명인이 되었다고 생각한걸까.


아마 조만간 사진이 나올것이다. 정말 가관이겠지. 하지만 열어볼 용기도 안난다. 그떄 감정이 다시 살아날것 같아. 그 페이지 다시 열어보고싶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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