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by 야호너구리

외근은 가끔 있는 편이다. 대부분은 내가 갈 자리가 아니지만, 상사가 자리를 비우면 어쩔 수 없이 대타로 끌려 나간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무슨 협회에서 주최하는 VIP 행사라는데, 번쩍이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으니 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아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아니라, 잘못 배달된 택배 상자 같다는 기분이 더 정확할까. 뭐 그게뭐든.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다. 그냥 빈자리를 채우고, 적당한 타이밍에 박수를 치고, 시종일관 의미 없는 미소를 얼굴에 붙여두는 것. 박수 기계, 미소 짓는 마네킹. 뭐 그런 역할이다. 이것도 일이라면 일이니깐 나름 성실하게 연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되묻는다. 굳이 나까지 이 자리에 필요한가.


어느 무대든 주인공을 빛내줄 배경은 필요하겠지. 근데 굳이 나까지 필요한가. 들러리인 건 내 인생 하나로도 벅차다. 제발 그만.


간단한 코스 요리가 나왔다. 손가락 네 개를 합친 것보다 작아 보이는 안심 스테이크. 맛잇는거 같기는 한데, 이걸로 허기가 가실 리 없다. 누구 코에 붙이라고. 아직 어른이 덜 된 건지, 이런 불편한 자리에서 먹는 건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맛도 잘 안느껴지고 속이 얹히는 기분이다.


슬슬 파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집에 가면 치킨이나 시켜 먹어야겠다. 머리가 깨질것 같이 시원한 맥주랑 같이. 그러고는 외치겠지. 이게 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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