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상한 공상을 다하는데, 가끔 내가 인기 작가가 돼서 북 콘서트 같은 걸 하는 상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뭐, 상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근데 막상 그런 자리가 생긴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게 더 무섭다.
가장 무서운 건, 내 밑천이 전부 드러나는 거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속 빈 강정이고, 그럴듯한 글 몇 줄 뒤에는 별다른 경험도, 깊이 있는 사유도 없는 그냥 그런 인간이라는 걸 들키는 것. (물론 애초에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나는 그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잘 숨기거나, 포장이라도 그럴싸하게 해야 할 텐데, 나는 나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영 재주가 없다. 이상하게도 남들에게 말할 때는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조심하고, 좋은 말로 돌려 말하려고 애쓰는데, 정작 내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냉철하고 객관적인 척한다. 어쩌면 그게 자신감이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연봉 협상에서도 그랬다. 내가 뭘 얼마나 잘했고, 회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뭐 그리고 딱히 회사에 원하는것도 없었다.
대신 내가 한 말은, 연봉 협상 자리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언제든 제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그게 내 진심이었다. 어디든 더 좋은 일이 있거나, 더 의미 있는 일이 있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이런 말을 하는 직원을 누가 좋아할까.
예전에 어떤 분이 자기가 좋아하던 에세이 작가를 만났는데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에서는 그렇게 좋은 말만 하더니, 만나서는 하루 종일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돈 이야기만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최소한 저렇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글과 삶이 다른, 그런 종류의 위선은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포장도 못 하고 속 빈 강정인 채로 살아간다. 들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은 뭐 하나 아다리가 하나도 안맞는. 뭐 어쨌든 그렇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