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뻔해서 절망하는 삶

'용사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우리들에게

by 야호너구리

친구인 K가 조만간 결혼을 한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지 요즘 들어 하소연을 많이 한다. 결혼에 대한 걱정과 설렘, 기대와 아쉬움. 그 양가감정이 교차하는가 보다. 그의 불안을 듣다가, 나도 씁쓸해진 순간이 있었다. 그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K, 요즘 세상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너무 확실하고 뻔해서 그게 힘든 거야."


K는 그 말을 듣고 맥주만 들이부었다. 물론 나도 맥주만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왜 그런 헛소리를 했냐면, 최근에 다시 켠 낡은 게임 때문이다. 이미 클리어했던 드래곤 퀘스트 5. 이 게임, 참 웃긴다. 주인공은 용사가 아니다. '용사의 아버지'다. 이런 뻔한 RPG에서 어떻게 주인공이 용사가 아닐 수가 있을까.


그 뻔한 스토리라인. 아버지를 잃고, 노예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마침내 '진짜 용사'인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인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물리친다. 다시 플레이하니, 지독한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 스토리가, 이내 내 또래들의 인생과 겹쳐 보였다.


이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것. 게임 속 주인공의 캐릭터 설명은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바뀐다. '아버지의 아들', '노예', '도망친 노예', 그리고 '누군가의 남편', 마지막엔 '용사의 아버지'. 정작 '나 자신'으로 불리는 순간은 없다. 주인공의 존재 이유는,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발판일 뿐이다.


주인공은 뭐가 되고 싶었을까. 이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그 레일 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불확실함'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다.


곧 결혼하는 K의 인생만큼은, 그 뻔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해진 결말을 묵묵히 따라가는 걸 지켜보는 건, 내 드래곤 퀘스트 하나로 충분하니까.


우주에서 가장 큰 존재는 자기 자신이고, 그 삶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도 때론 모든 게 힘들어져서, 그냥 그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본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K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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