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관객

살리에르보다 앙상블이 더 눈에 밟히던 밤

by 야호너구리

내 주머니 사정이란 게 넉넉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은 가끔 문화생활도 좀 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주의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살리에르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라기에, 관람을 하였다.


막이 오르고, 무대 위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연했다. 관객들은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2인자, 살리에르의 절규에 몰입해 숨을 죽였다. 노력해도 천재를 이길 수 없는 범재의 고통. 그게 한국 사람들의 2등 콤플렉스를 자극해서 인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영 와닿지가 않았다. 무대 위 살리에르는 궁정 악장이고, 부자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다. 그런 사람이 고작 신의 목소리를 못 가졌다고 괴로워하는 게, 내 눈에는 배부른 귀족의 투정처럼 보였다. 돈이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속물에게는, 그의 고통은 너무나 고상하고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오히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무대 뒤편과 가장자리를 바쁘게 오가는 앙상블과 스윙들이었다.


그들은 이름도 없다. 방금 전에는 귀족이었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하인이 되고, 다시 시민이 되어 무대를 채운다.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고뇌를 연기할 때, 그들은 암전 된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품을 나르고, 다음 배역을 준비하며 쉴 새 없이 달린다.


그들의 땀방울이 살리에르의 눈물보다 더 진짜 같았다.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무대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얼굴을 바꾸며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기어이 나를 봤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이름 없는 직원 1, 행인 1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질 때, 나는 주연 배우가 아닌 저 뒤에 선 앙상블들에게 더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이 연극을 지탱한 건 신의 재능을 질투하는 살리에르가 아니라, 묵묵히 제 몫의 땀을 흘린 그들이었으니까.

나오면서 생각했다. 좋은 공연이었지만, 내가 감동한 지점은 남들과 좀 달랐던 것 같다. 화려한 비극보다는, 치열한 노동이 더 마음에 남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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