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도박꾼들

선한 영향력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by 야호너구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사실 기억나지않는다. 뭐 취직이 잘된다고 했던가. 그랬던가. 뭐 그런 하찮은 이유였다. 경쟁사회에 지쳐버린 나에게 사회복지사라는 것 그런 경쟁사회에서 도망칠수 있는 구원처럼 보였으니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위해서는 현장실습을 나가야하는데, 현장 실습을 나간 곳은 지역아동센터였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지옥과 천사가 한 공간에 있는 기괴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은 지독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방치된 다문화 가정의 아이,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맞아서 눈에 멍이 든 채 웃고 있는 아이, 아버지가 죽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겉도는 아이, 집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채우려고 나에게 매달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


실습이 끝날 무렵, 센터장님은 나에게 먼저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망쳤다. 나는 그들의 구원자가 될 그릇이 못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의 거대한 불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만 챙겨서 비겁하게 등을 돌렸다.


그렇게 도망쳐서 자격증을 땄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남아있었다. 아이들은 감당 못 해도, 다른 곳에서는 소외된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이었다.


첫 직장은 노인센터였다. 나는 의욕이 넘쳤다. 추석을 앞두고 독거노인들에게 떡국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인터넷 모금을 기획했다.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마음을 흔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소위 가난 포르노를 찍었다. TV에서 맨날 하는 짓을 나도 똑같이 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더 처량해 보이게 연출하거나, 일부러 거친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어 올렸다. '이분들을 도와주세요'라는 호소력 짙은 문구와 함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백 몇만 원. 내 연출된 사진과 글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내 힘으로 누군가의 명절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업무 차 동네를 돌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며칠 전 내 카메라 앞에서 세상 가장 슬픈 표정을 짓던 그 할아버지였다. 그가 들어간 곳은 쌀가게도, 병원도 아니었다. '성인 오락실' 간판이 번쩍이는 곳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들여다본 안쪽 풍경은 기괴했다. 끼니 걱정을 하며 한숨 쉬던 그 노인은, 오락기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버튼을 두드리는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바다이야기. 그 철 지난 도박 기계가 뱉어내는 불빛 아래서, 내가 알던 선량한 약자는 없었다. 그저 도파민에 중독된 도박꾼만 있을 뿐이었다.


정부에서 받은 생계비를, 그리고 나 같은 사회복지사들이 그들의 가난을 전시하고 팔아서 모아온 후원금을 그 기계 구멍 속에 털어 넣고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한 짓은 무엇이었나. 가난한 이웃을 도운 게 아니라, 그저 도박꾼의 판돈을 대준 꼴이었다. 내가 느꼈던 그 뿌듯함은, 그들의 중독을 연명시켜 주는 숙주 노릇을 했다는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장강박증을 앓던 할머니도 있었다. 집안 가득 쓰레기를 쌓아두고 사는 그분을 보며, 나는 단순히 청소를 해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뻔질나게 찾아가 말벗을 해드리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센터에서는 그 할머니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너희들은 머리에 먹물만 찬 행정가들이고, 난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킬 거야'라는 알량한 정의감과 사명감에 불타올라 혼자 영웅 놀이를 했다.


오랜 노력 끝에 할머니가 집을 치워도 좋다고 허락했을 때, 나는 전율했다. 쓰레기 더미가 치워지고 환해진 방을 보며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을, 한 사람의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구나.


하지만 착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은 그 집은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짐은 전보다 더 많아져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비워낸 공간만큼 더 빠르게 불안과 쓰레기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센터에서 그 할머니를 방치했던 진짜 이유를. 한정된 인원으로 100명 가까운 노인들을 관리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변화할 가능성이 희박한 한 사람에게 모든 행정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냉정한 게 아니라, 전체를 살리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나 혼자 뜨거워서 설쳐댔던 꼴이라니.


지독하다.


아동센터에서 도망치고, 노인센터에서 좌절하며 나는 변했다. 더 이상 이용자에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가 선한 것은 아니며, 도움을 준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게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었다.


나는 구원자가 아니라 행정가로 남기로 했다. 감정을 섞지 않고, 그저 그들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안전망만 확인하는 관리자.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의 현실에서는 기대하지 않는다. 믿음은 갖되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바닥에서 미치지 않고 버티기 위해 터득한 유일한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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