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내 이력서 경력란의 맨 아래, 가장 오래된 줄에는 '테마파크 안내 요원'이라는 한 줄이 적혀 있다. 면접관들은 이 경력을 좋아한다. "서비스 마인드가 좋겠군요", "성실해 보이네요",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요"라며 웃는다.
나는 그 앞에서 "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게 보람찼습니다"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정말 치열하게, 그리고 모범적으로 일했으니까. 하지만 이력서 뒷면에 적힌 진짜 기억은,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직업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꿈을 파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소방관, 의사, 요리사... 아이들은 제복을 입고 미래를 연기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무대 뒤편에는, 그 꿈을 연출하기 위해 최저 시급을 받으며 감정 노동에 갈려 나가는 20대 초반의 알바생들이 있었다.
회사는 우리에게 꿈과 열정을 강요했다. 너희는 단순한 알바가 아니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수퍼바이저다. 그럴싸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뜻은, 쥐꼬리만한 시급을 주면서 노동 강도는 최고치로 뽑아내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서서, 인공적인 미소를 얼굴에 본드로 붙인 채, 아이들을 통제하고 부모들의 컴플레인을 받아내야 했다.
당시 나는 주간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시간표를 기형적으로 비틀어 가며 일을 했다. 오전에는 학교를 가고 오후에는 일을 하거나, 반대로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수업을 들었다.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나는 유독 아이들에게 친절했다. 단순히 교육을 잘 받아서가 아니었다. 내 안의 깊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을 기다리며 텅 빈 집에서 혼자 TV를 보며 외로워했던 나 자신. 그 시절 내가 받지 못했던 관심과 행복을, 눈앞의 이 아이들에게는 주고 싶다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나를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했고, 아이들의 웃음 하나에 내 피로를 잊으려 애썼다. 그 덕분에 나는 에이스가 되었다. 고객 칭찬 엽서가 쏟아졌고, 급기야 신입 사원 교육용 OJT 노트에 내 사례가 모범 답안으로 실리기까지 했다.
그때는 그게 뿌듯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 같아서.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동료들에게 공공의 적, 아니면 재수 없는 사측 앞잡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슬펐던 건, 내 동료들의 얼굴이었다. 갓 스무 살, 스물한 살.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의 아이들. 처음엔 그들의 눈에도 세상에 찌들지 않은 안광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 빛나는 젊음을 연료 삼아 공장을 돌렸다. 쌩쌩하던 아이들이 몇 달 만에 눈이 퀭해져서, 영혼 없는 기계처럼 멘트를 읊조리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그런 그들 옆에서, 혼자 과도한 친절과 열정을 뿜어내는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최저 시급을 받으며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나의 행동은 '기준'을 높여버리는 민폐가 아니었을까.
문득 오이디푸스 신화가 떠오른다. 그를 파멸로 몰고 간 건 그의 비겁함이나 악함이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전염병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겠다는 정의감과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였다. 그 선한 의도가 그를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나의 테마파크 시절도 그랬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선의를 베풀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그 순수한 열정이, 시스템에게는 착취하기 좋은 명분을 줬고, 동료들에게는 숨 쉴 틈 없는 압박을 줬다는 사실. 인생이란 게 참 짓궂다. 때로는 나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누군가에게 가장 깊은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
나는 모범 사원이 아니라, 시스템이 가장 사랑하는 '고장 나지 않는 부품'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옆의 다른 부품들을 더 빨리 마모되게 만든, 눈치 없는 부품.
그래서일까. 가끔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일이 있을때마다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목소리 낼 수 있을 때 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못 지르게 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돌고래 같은 고음을 낼 수 있지만, 자라면서 그 소리를 쓰지 않으면 성대가 굳어 다시는 그 음역대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벼룩도 마찬가지다. 병뚜껑 높이만큼만 뛰도록 학습되면, 뚜껑이 사라져도 더 이상 높이 뛰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나처럼, 학습된 무력감에 갇혀 영영 소리 지르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내 딴에는 그게 속죄이자,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깐.
퇴사하던 날, 나는 유니폼을 반납하며 다짐했다. 내 젊음은 이미 도둑맞았다.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앞으로 다른 젊음을 내가 착취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나의 노력이 타인을 옥죄는 도구가 되게 하지는 않으리라. 난 그렇게는 살지 않으리라.
칭찬으로 가득했던 그 OJT 노트가, 지금 생각하면 나의 가장 부끄러운 자서전처럼 느껴진다. 그 시절, 회사의 입맛에 딱 맞게 길들여졌던 나. 그 멍청했던 성실함을 묻어버릴 수만 있다면, 내 무덤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으로 입안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