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맥이 재산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그런데 내 주소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 바닥에서 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속을 터놓고 지내는 동료는커녕 건너 건너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내가 워낙 방어적인 인간이라 벽을 치고 산 탓이 크다.
그래서 큰맘 먹고 지역의 청년 네트워크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인맥을 넓혀보자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이력서의 '대외활동' 란 한 줄을 채우려는 목적도 컸다. 스펙이라곤 없는 내 이력서가 너무 휑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결핍이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역할 없이 겉돌고 있었기에, 이곳에서만큼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첫 모임에 나갔을 때, 나는 기가 질렸다. 다들 어찌나 열정적이고 사교적인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형, 동생 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명함을 돌리며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는 모습들이 마치 다른 행성 사람들 같았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좀 살아야 하나, 반성도 했다.
하지만 그 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필연적으로 정치가 생겨나고, 각자의 다양한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나처럼 이력서 한줄 만들러오는사람, 인맥 늘리려는 사람, 뭐 팔려고 온사람등등.
그래도 이력서 한 줄이라도 건지려면 참여는 해야 했다. 제안서를 쓰고 PPT를 만들었다. 내 딴에는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내가 늘 귀에 딱지가 앉게 말하는 거지만, 비판하는 건 쉽다. 진짜 어려운 건 없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디어를 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대신 내 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까지 비난할 기세로 내 입만 쳐다보다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주 고운 말로 비난을 퍼부어댔다. 현실성이 없느니, 방향이 별로라느니.
그래, 내가 부족한가 보다,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는 몇 번의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형님 동생 하며 열심히 회식을 하러 다녔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굳이 저 틈에 끼어서 비위를 맞추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뒀다. 대단한 비판을 하셨으니, 대단한 결과물이 나오겠거니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내 아이디어가 채택됐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공유된 발표 자료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건 PPT가 아니었다. 인터넷 밈으로나 떠돌던, 그 전설의 X 같은 보노보노 PPT가 내 눈앞에 실물로 있었다. 대학생도 아니고 건실한 직장다니는 사람이 만든 PPT라니. 믿을수가 없었다. 아니 요즘 대학생들이 더 잘만들껄..
이대로 발표를 한다고? 부끄러움 보다는 이 프로그램을 계획한 분한테서라도 죄송스러워서라도
그 꼴은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멨다. 밤을 새워 싹 갈아엎어서, 기냥 적당한 정도로 자료로 다시 만들어서 올렸다. (말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디자인이 좋다는 건 아니다. 기냥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만들뿐이다.)
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반응은 가관이었다. "너무 칙칙하지 않아요?", "임팩트가 없는데." 아주 고운 말로 포장된 비난이 쏟아졌다. 가장 기가 막힌 건, 그 X 같은 보노보노 PPT를 만들었던 당사자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가장 크게 비난했다는 점이다. 미적 감각이라곤 쥐뿔도 없는 인간한테 디자인 지적을 듣고 있자니,(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잘한다는 건 아니다 치면 평균 조금 아래라고 생각하는데 보노보노는 그저 최악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판하는 건 쉽다. 진짜 어려운 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할 기세로 로 덤벼들었다.
그래, 내가 부족한가 보다, 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을 섞는 게 무의미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발표는 어느분이 하실꺼냐. 하실분 없으면 제가 하겠다고 했더니, X 같은 보노보노 PPT를 만들었던 당사자가 다시 등장하여, 자신이 발표 하겠다고 나섰다. 마지막 스포트라이트는 본인껏이라는 것인가.
알겠다고 말하고 난 마지막 발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후 연락을 받게 되었고
내가 속해있던 그룹은 5개 조 중에서 2등을 했다고 한다. 이제 자기들끼리 술먹으러 가니 오라고 한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뒤풀이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을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다. 그 2등이라는 성적표가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인맥은커녕, 인간에 대한 회의감만 하나 더 얹어서 돌아왔다. 그래도 난 뻔뻔하게 이 이력을 이력서에 기재했다. 내 마음은 텅 비어버렸을지언정, 대외활동 칸은 채워야 했으니까. 뭐 전쟁은 시작됬고, 얼마나 얻어맞았던, 전쟁의 전리품이라도 챙기는 게, 내가 배운 생존법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인건가. 극단적인 이상주의자기 때문일까. 기냥 좀 더 좋았을수 있었는데텐데, 내 스스로한테도 실망한 시간이었다.
좀더 네트워크에 대해 생각하고 그래도 억지로 웃으면서, 좀 참가했다면 달랐을까. 늘 인간은 인간과 어울려서 살아야된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력서 대외활동 기간에 꾸역꾸역 청년의원에 대해 적는걸 보면, 뭘 잘했다고 적는 내모습이 한심해보였다. 나도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이력서 한켠에 보이는 청년 위원이라는 글자가 마음을 쿡쿡 찌른다.
추신. 놀랍게도 이 모임은 그 후로도 장기적으로 지속이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라도 껴달라고해야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