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못파는 영업사원
내가 하는 일이 명함에 영업직이라고 박혀있는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깨닫는다. 산다는 건 결국 다 영업이다. 물건이든, 기획안이든,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든. 누군가를 설득해서 팔아먹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게 인생인갑다.
사실 영업 경험이 전무한 건 아니다. 재수 끝나고 잠시 가전 매장에서 전기난로를 판 적이 있다. 근데 그건 영업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쉬웠다. KC 인증 딱지 붙은 튼튼한 제품들이었으니까. 내가 굳이 입 아프게 설득하지 않아도, 기냥 서 있다 보면 추위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알아서 지갑을 열었다.
그때 알았다. 물건이 확실하면 파는 놈이 혀를 놀릴 필요가 없다는 걸. '살 사람은 산다'는 배짱 영업이 통하는 건, 그 물건이 제값을 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영 성과가 없다.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 내가 파는 이 물건에 대해 나조차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물건이 기가 막히게 좋아야 침 튀기며 자랑도 하고 강매도 할 텐데, 내가 봐도 영 엉망진창인 걸 남한테 좋다고 포장하려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기 치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늘 그랬다. 면접장이나, 혹은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해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늘 쭈뼛거렸다. 겸손해서가 아니었다. 남들은 없는 장점도 만들어서 화려하게 포장지를 씌우는데, 나는 있는 그대로의 흠집이 보일까 봐 감추기에 급급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잘 팔리는 상품, 그 시절 전기난로 같은 인증된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화점 명품관에 진열될 급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았다. 그렇다면 마트 매대 정도는 될까. 아니, 거기도 치열하다. 그럼 만만한 다이소 정도? 에이, 다이소 물건들은 적어도 가성비라도 있지.
냉정하게 가격표를 붙여보자면, 나는 고물상 구석에 처박힌 고장 난 선풍기 쯤 되지 않을까. 목은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버튼을 눌러도 날개는 돌아가지 않고 웅웅거리는 소음만 내는. 여름 한 철 시원하게 해 줄 능력도 없으면서, 버려지지는 못해 녹슬어가고 있는 고철 덩어리.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매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이런 걸 돈 주고 사가겠나 싶다가도, 혹시 누군가는 이 고장 난 선풍기의 모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녹슨 날개의 빈티지한 멋을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구차한 기대를 품게 된다.
파는 사람도 믿지 않는 물건을 사야 하는 손님이나, 그걸 팔아야만 하는 나나, 참 딱한 노릇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고장 났어도, 팔려야만 숨이 붙어있는 게 내 운명인 것을. 오늘도 나는 먼지 쌓인 날개를 닦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거, 고쳐 쓰면 꽤 쓸만할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왜 사는 사람이 이걸 고쳐야 되는지는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