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리뷰는 5점

소심한 이중인격자

by 야호너구리

브런치 월간 통계를 보며 잠깐 기뻤지만, 나는 안다. 이 조회수는 대부분 품앗이라는 냉정한 거래 위에서 굴러간다는 것을.


브런치라는 곳은 겉으로만 고독한 글쟁이들의 정원일 뿐이다. 그 안에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는 생존 공식이 작동한다.


내가 작가 A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건, 언젠가 그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게 할 미래의 빚을 만드는 행위다. 구독은 이 외로운 세상에서 서로 나는 존재한다고 확인시켜주는 최소한의 보험이다.


나는 이 시스템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힘든 창작자들에게 작은 격려를 보낸다는 것은, 온기를 나누는 선한 순환이다. 나 같은 반골 기질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기꺼이 그 선순환에 동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속의 까다로운 고집이 그 쉬운 선행을 가로막는다.


회사 생활에서 온종일 가면을 쓰고 지내는 것도 지쳤는데, 내 글쓰기 공간에서까지 가짜 독자를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나는 내 글이 거래나 의무가 아닌, 오직 진심의 힘으로만 읽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 품앗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


내 평론가 기질이 발동하여, 나는 오직 내가 감동한 글에만 구독과 라이크를 날린다.


웃기게도, 나는 배달 리뷰는 맛없어도 5점을 꼬박꼬박 준다. 내 평점 하나 때문에 사장님이 피해를 볼까 봐 두려워서, 리뷰 요청 문자에 차마 거절을 못 해서, 현실의 나는 비굴할 만큼 친절하다.


그런데 뭐 대단한 놈이라고, 브런치 라이크 하나, 구독 하나를 누르는 데는 그렇게 신중한가.


현실에서는 을의 생존을 위해 위선을 떨면서, 익명의 공간에서는 평론가가 되어 감동이라는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들이댄다. 남들은 기계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품앗이 잔고를 쌓는데, 나는 그 작은 품앗이조차 내 눈높이를 통과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좋은 일도, 돈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이상한 고집 때문에 못 하는 놈.

현실에서는 비굴하게 착하고, 인터넷에서는 고독하게 지저분하고 까다로운 놈


이 정도면 이중인격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브런치 창을 켜놓고,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닫아버리는 글러먹은 이중인격자로 남는다.


어휴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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