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끝났는데 가난은 안 끝났다 1

통계청 보고서가 읽지 못한

by 야호너구리

점심을 먹으며 멍하니 뉴스를 보다가 2025년 청년 삶의 질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오길래 숟가락을 물고 호기심에 원문을 찾아봤다.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 제목 한번 거창하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며 서론을 읽다 보니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표지에 적힌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는 이제 이 보고서가 정의하는 푸릇푸릇한 청년의 범주에서 탈락했다. 나이는 찼고 흰머리는 늘었고 사회복지사 명찰도 떼어버린 지 오래다. 국가가 보기에 나는 이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알아서 제 밥벌이를 해야 하는 기성세대에 진입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내 통장 잔고와 자산 상태는 여전히 이 보고서가 걱정하는 '위기 청년'의 수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몸은 늙어서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주제에 지갑만 철없이 동안이다. 염병.


2025년 최저시급이 10,030원이라고 한다. 드디어 만 원을 넘었다. 첫 알바를 했을때 내기억으로는 3400원 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편의점 알바도 주휴수당을 챙기면 월 200만 원 언저리를 만지는 세상이 온 거다.(하지만 나는 안다. 쪼개기 근무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편의점 일을 안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나는 한때 스스로를 세후 190 인간이라 불렀다. 그 숫자가 내 정체성이었고 내 가난의 좌표였다. 이직을 하고 운 좋게 그 마의 구간을 넘겼을 때, 통장에 찍히는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 광고처럼 짧은 안도감이 스쳐 갔다. 드디어 말라비틀어진 콩나물 신세를 면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보고서에 나온 자산 격차 이야기나 소득 만족도 그래프를 뜯어보며 깨달았다. 최저임금이라는 바닥이 같이 올라와 버린 거다. 내가 죽어라 팔을 저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수위도 덩달아 높아져서 여전히 턱 밑까지 물이 찰랑거리는 꼴이다. 190만 원을 넘겼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오'다. '자산 형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나에게 해석 불가능한 외계어처럼 들린다.


보고서는 청년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갖 대책을 나열하고 있었다. 청년 도약 계좌니 희망 적금이니 하는 단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박탈감이 폐부를 찔렀다. 나는 이제 그 사다리를 탈 자격조차 없다. 나이 컷에 걸리니까. 국가는 나를 이제 '도와줘야 할 새싹'이 아니라 '알아서 비바람을 견뎌야 할 고목' 쯤으로 분류한 모양이다. 뿌리 내린 흙은 여전히 척박하고 영양분 하나 없는데 나이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각자도생의 정글로 떠밀려났다.


사회복지사 시절에는 남들의 가난을 상담하고 그들의 수급비를 걱정했는데 지금 회사원이 된 나는 정작 나의 가난을 상담해 줄 곳이 없어 밤마다 ai와 독대한다. 친구 U가 결혼하며 샀다는 아파트 가격을 듣고 나면 내가 받는 근로소득이라는 게 참 허무해진다. 성실하게 쌓아 올리면 튼튼한 계단이 될 줄 알았는데 남들이 부모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쌓은 건 계단이 아니라 그냥 내 무덤이었나 싶다.


뉴스를 끄고 모니터를 덮었다. 나는 통계청이 분류하는 청년은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분류하는 빈곤의 경계선에서는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내 노동의 값어치는 숫자로 보면 분명 올랐을지 몰라도 내 삶의 무게는 1그램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라는 무게추가 하나 더 달렸을 뿐이다.


보고서가 말하는 '삶의 질' 같은 건 모르겠고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이나 막아야 한다. 오늘도 늙어가는 콩나물은 묵묵히, 그리고 꾸역꾸역 키보드를 두드린다. 청년 지원금은 못 받아도 내 인생의 구멍은 내가 메워야 하니까.


추신. 아래에 청년 삶의질 2025 보고서가 있습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듯합니다.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35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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