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끝났는데 가난은 안 끝났다 2

곰팡이는 호흡기에 나쁘다.

by 야호너구리

소득 파트를 읽고 난 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보고서의 다음 장인 '주거' 페이지를 넘겼다. 보고서에는 '청년 1인당 주거 면적의 변화'니 '주거비 부담 지수'니 하는 말끔한 단어들이 적혀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게 전부 시한폭탄 제거 매뉴얼처럼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전세 사는 세입자에게 '주거'란 안식처가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증금을 깔고 앉아 버티는 공성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장 현재 환율과 금리를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언젠가는 이 거대한 버블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게 올해일까? 아니면 내년일까? 아니면 버블이라는 공포 그 자체도 버블일까.


뉴스를 틀면 하루가 멀다고 전세 사기니 깡통 전세니 하는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그 뉴스를 볼 때마다 나와 아내는 서로의 눈을 피한다. 우리 집주인은 착한 사람일까? 아니, 착한 건 필요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일까?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기도를 한다. 제발 다음 세입자가 빨리 구해지게 해주세요. 제발 내 피 같은 보증금이 공중분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내 전재산입니다. 씨발.)


보고서는 청년들의 '주거 상향 이동' 욕구가 높다고 분석한다. 웃기는 소리다. 상향은커녕 지금 있는 이 낡은 빌라에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나에게 주거의 목표는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길바닥에 나앉지 않는 것이다.


아내의 회사가 간당간당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우리는 서울 지도를 펴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니, 정확히는 서울 지도를 덮고 전국 지도를 폈다. 여보 우리 그냥 지방으로 내려갈까.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반사적으로 부동산 앱을 켰다. 서울의 이 닭장 같은 전세금이면 지방에서는 운동장만한 거실이 딸린 신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 베란다 결로 따위 없는 시스템 에어컨 달린 천장을 보며 살 수 있다. 앱 속의 매물 사진들은 마치 천국처럼 보였다. 순간 혹했다. 190만 원 시절부터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닌 서울의 그 살인적인 집값에서 해방될 수 있다니.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보던 내 손가락은 금세 멈췄다. 지방에는 집은 있는데 결정적으로 우리를 받아줄 '돈 더 주는 직장'이 없다. 보고서는 청년들이 지방 이주를 꺼리는 이유를 문화 인프라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소리 내어 비웃었다.) 스타벅스가 없어서, 영화관이 멀어서 안 가는 게 아니다. (거짓말 안 치고 영화관은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다.)


거기 가면 굶어 죽으니까 안 가는 거다. 서울은 지옥이지만 월급을 주고 지방은 천국 같지만 백수로 살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2025년에도 이 더럽고 비싼 서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직주근접'이 삶의 질을 높인다고? 나에게 직주근접은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이다.


보고서 말미에는 '청년 주택 공급 확대'라는 뻔한 대책이 적혀 있었다. 그 대책이 실현될 즈음이면 나는 아마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청년 주택' 입주 자격에서는 나이 컷으로 탈락했으니 그림의 떡이다. 나는 부동산 앱을 끄고 베란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봤다. 염병, 결로 공사는 한두 푼이 아닌데 괜히 집주인 심기 거스르면 보증금 줄 때 딴소리할까 봐 입도 뻥긋 못 하겠다.


내 집(내 집이라는 표현도 웃기다, 임시거처라고 하자)은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사는 임시거처일 뿐이다. 보고서가 말하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란 건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베란다 결로로 인해 생긴 곰팡이를 닦는다. 곰팡이는 호흡기에 나쁘다던데.


도대체 결로는 왜 생기는 걸까. 어휴. 문과놈이 뭘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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