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로 살기로 결심했다 - 5

사랑이라는 이름의 부채감

by 야호너구리

장모님은 혼자시다. 아내의 부모님은 아내가 10살 무렵 갈라섰다.


그 모진 세월 동안 장모님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 아내를 키워냈다. 당신 입에 들어갈 것 당신 몸에 걸칠 것을 아껴가며 오직 딸 하나를 위해 헌신했다. 그 덕분에 아내는 구김살 없이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자랐다.


누가 봐도 눈물겹고 위대한 모성애다. 장모님은 지금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신다. 틈만 나면 반찬을 해 나르시고 딸의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에 화색이 도신다.


아내가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분명 자기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없었더라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 거라고.


꽤나 명확한 결론이었다. 자신이 없었으면 엄마는 새출발도 했을 것이고 돈을 모아 여행도 다니며 엄마가 아닌 여자로 살았을 텐데 엄마 인생엔 나밖에 없어서 평생 가난하고 외롭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덧붙였다. 본인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절대적인 크기를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자식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붓지만 자식은 그 무게가 버거워 뒷걸음질 치거나 적당히 외면한다. 아내는 그 슬픈 짝사랑의 굴레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내는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랑이 너무 무거웠던 거다. 자신이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아내에겐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부채감이자 보이지 않는 족쇄였던 셈이다.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모님의 헌신을 폄하할 수도 아내의 죄책감을 부정할 수도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게 부모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부모가 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을 때 자식은 고마움을 넘어선 미안함을 안고 산다. 내 존재 자체가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든 원인이라는 원죄 의식.


우리가 딩크를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내 자식에게 너 때문에 살았다거나 너만 아니었으면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내 아이가 나를 보며 나 때문에 아빠가 저 고생을 한다며 숨죽여 우는 꼴도 보고 싶지 않다.


지금 우리 부부의 삶은 심플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인생 목표는 아니다.


아내는 이제야 조금 가벼워 보인다. 엄마의 딸로서 짊어졌던 그 무거운 죄책감을 적어도 자신의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핏줄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질긴 희생의 사슬을 끊어내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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