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버지의 앨범을 보다가 멈칫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서른 살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삐삐머리를 한 누나와 기저귀를 차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작지만 내 집이라는 배경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시절의 서른은 그런 나이였다. 어엿한 직장이 있고 처자식이 있고 집 한 채를 책임지는 진짜 어른의 나이.
하지만 2025년의 서른 살은 다르다. 사회 전체가 늙어버린 탓일까. 사회의 중위연령이 높아지면서 서른 살은 묘하게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 인생 선배들은 말한다. 서른이면 아직 애기네.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야.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기만이다. 서른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미 완성되었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사회 구조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아직 준비 덜 된 훈련병 취급한다.
비극적이게도 나는 그 취급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서른 살이 되도록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까
남자의 경우 군대 2년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면 스물여섯이다. 그것도 재수나 휴학 없이 기계처럼 모든 과정을 한 번에 끝냈을 때의 이야기다. 바로 취업하면 다행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건 기적이다.
오히려 대학 시절엔 무조건 빨리 졸업하는 게 독이라는 말이 돌았다. 졸업 후 취업까지의 공백기를 면접관에게 해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다들 졸업을 미루고 스펙을 쌓으며 학생 신분을 연장했다. 그렇게 눈치 보며 정신 차리면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는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나는 더 심했다. 서른이 넘어서도 번듯한 직장 명함 하나 파지 못했다. 사회적 진입 나이가 늦어진 것이다. 몸은 어른인데 통장과 커리어는 갓난아기인 기형적인 상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회에 진출하는 나이는 늦어졌는데 은퇴해야 하는 나이는 그대로다.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아졌다는 뜻이다.
부모님 세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40년을 벌어서 자식을 키우고 노후를 준비했다. 하지만 우리는 길어야 25년 남짓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내 집도 마련하고 노후도 대비해야 하는데 아이까지 키운다? 이건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계산이다.
늦깎이 신입사원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기쁨보다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야 1인분의 밥값을 한다는 안도감.
그렇게 몇 년을 구르고 굴렀지만 내 명함에는 여전히 '주임'이라는 두 글자가 박혀있다. 나이는 어느새 서른 중후반을 향해 가는데 말이다. 직급은 사회초년생 언저리인데 나이만 먹어버린 애매한 상태. 물론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에 라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모든 것을 내탓을 하기에는 너무 슬프기에,
이제 겨우 숨 좀 돌리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며 늦은 내 인생을 즐기나 싶었는데 세상은 다시 재촉한다. 늦었으니 빨리 결혼해라 빨리 애 낳아라.
억울했다. 내 20대는 온전히 사회에 끌려다닌 시간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추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살았다. 이제 겨우 내 돈 벌어 내 인생 좀 살아보려는데 바로 육아라는 또 다른 희생의 터널로 들어가라니.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지금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대학에 갈 때 나는 환갑이 넘는다. 은퇴한 노인이 되어 등록금을 대야 한다는 공포. 늙은 아빠가 되어 경제력을 상실했을 때 겪을 비참함.
우리는 너무 늦게 출발선에 섰다. 늦은 만큼 더 치열하게 달려야 겨우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며 노후를 대비하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누군가는 철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겨우 찾은 나의 삶을 조금 더 누리고 싶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느라 이 소중한 안정감을 포기하기엔 내가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바친 청춘이 너무 길고 고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딩크를 택했다.
이제야 겨우 내 몫을 하며 살게 되었는데 다시 육아라는 짐을 지고 싶지 않았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은 시간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