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모든 생명은 축복일까
세상은 입을 모아 말한다. 생명은 축복이라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그 아이에게 쏟아지는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축복받았는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지역 아동센터에서 실습과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부모의 불화로 방임되었거나 경제적 이유로 맡겨진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밝았다. 하지만 그 밝음 뒤에는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는 습관적인 긴장이 배어 있었다. 낡은 옷소매와 발에 맞지 않는 신발. 그리고 가끔 허공을 응시하는 공허한 눈빛들.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지만 그곳에서 나는 신을 원망했다.
저 작은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아니면 흉악한 범죄라도 저질렀나. 왜 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결핍부터 배워야 하는가.
아무런 죄도 없다. 그저 부모를 잘못 만난 것뿐이다. 흔히 말하는 부모 뽑기 운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금수저를 물고 호텔 뷔페를 먹는데 어떤 아이는 센터에서 주는 급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세상을 너무 잘 안다. 얼마 전 친구가 어린 자녀에게 생일날 뭐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호텔 뷔페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 고작 유치원생 정도 된 아이가 벌써 자본의 맛을 아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도.
이 잔인한 불공평함 앞에서 생명은 축복이라는 말은 기만처럼 느껴졌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조차도 가끔은 부모님에게 묻고 싶었으니까.
왜 나를 낳았냐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느끼던 밤마다 나는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나에게 삶은 축복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숙제였다. 내 부모님도 나를 사랑해서 낳았겠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내 삶의 고단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겁이 난다. 내가 낳은 아이가 무조건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아이가 겪을 학교폭력 입시 지옥 그리고 내가 물려줄지도 모르는 가난.
무엇보다 두려운 건 높은 확률로 물려주게 될 나의 우울이다. 내 DNA 깊게 새겨진 이 지독한 우울을 죄 없는 다음 세대에게까지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만약 내 아이가 태어나서 나처럼 묻는다면. 왜 나를 낳았냐고 사는 게 너무 지옥 같다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래도 생명은 축복이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동센터의 아이들을 보며 그리고 지난날의 나를 보며 생각했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낳은 생명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일 수도 있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가 아닐까.
확신할 수 없는 축복을 내기하듯 저지르기엔 책임져야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 무겁다.